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자산유동화증권 전자단기사채(ABSTB)란 단어가 경제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유동화증권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자산을 담보로 했으니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홈플러스 사태를 통해 드러난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이번 ‘알기쉬운 경제’에서는 ABSTB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걱정하게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BSTB는 기업이 1년 미만 단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전자방식의 유동화 채권입니다. 홈플러스는 사업자금 마련을 위해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전단채), 그리고 ABSTB를 발행했는데요. 이 중 ABSTB에는 약 4000억원, CP·전단채에는 약 2000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ABSTB는 증권사의 리테일 창구를 통해 다수의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됐습니다.
ABSTB의 기본 구조를 볼까요. 예컨대 A씨는 친구 B씨에게 5000만 원을 빌려주고, 1년 뒤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급히 돈이 필요해진 A씨는 이 돈을 지금 당겨쓰기 위해 증권사가 만든 유동화전문회사(SPC)에 이 채권을 양도합니다. SPC는 이 채권을 바탕으로 투자증권을 만들어 투자자를 모집하고, A씨는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돈으로 현금을 확보합니다. 1년 뒤 B씨가 돈을 갚으면 SPC는 그 돈을 투자자에게 돌려줍니다. 이런 구조를 통해 기업은 자산을 유동화하고,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얻는 방식입니다.
ABSTB는 보통 3개월 단기채권입니다. 만기 시마다 차환 발행이 이뤄지죠. 예를 들어 1회차 증권 만기가 되면, 2회차를 발행해 받은 자금으로 1회차 투자자에게 상환합니다. 이런 식으로 3개월마다 연장하면서 최종 만기까지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차환이 원활하면 문제가 없지만, 기업에 이상이 생기면 곧바로 리스크로 번질 수 있습니다.

홈플러스 사례는 어땠을까요. 홈플러스는 물품을 C납품업체에서 사오기 위해 카드사를 통해 대금을 지급합니다. 이때 현대·신한·롯데카드 등 카드사의 구매전용카드를 사용하죠. 카드사는 돈을 빠르게 회수하기 위해 SPC와 유동화 계약을 맺고, SPC는 홈플러스의 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ABSTB를 발행합니다. 이 ABSTB는 증권사가 인수한 뒤 리테일 부서를 통해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됩니다. 카드사→SPC→증권사→투자자에게 자금이 순환되는 구조입니다.
이 프로세스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ABSTB는 단기채권으로 자금 운용 유동성이 높고 기초자산이 명확할 경우 상환 가능성이 높아져 비교적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 방식입니다.
지난 4일 홈플러스가 갑작스레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일반적으로 금융채권은 상환이 연기되거나 일부만 상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신용등급 강등 사전 인지 의혹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ABSTB를 상거래채권으로 판단, 전액 변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회생계획안이 법원에서 확정되지 않은 만큼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회생 계획 인가 후 ABSTB 상환이 결정되면 공익채권, 회생담보권, 회생채권 순으로 변제가 이뤄지는데, ABSTB는 상거래채권과 금융채권 구분이 없어 후순위로 밀리고 전액변제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해진 투자자들은 단체 행동에 나섰습니다. 홈플러스 물품구매 전단채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와 피해자들은 28일 서울회생법원에 물품구매용 ABSTB 조기변제 포괄허가 요청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회생 절차에 포함된 ABSTB가 전액 변제될 수 있을지, 일부만 받을 수 있을지는 법원의 판단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