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밭두렁에는 여린 쑥이 고개를 들었다. 헐벗은 나무에는 솜털 가진 새싹이 차오른다. 새 가방에 새 신발을 신은 학생들이 새 학교로 등교하는 날,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들 교복이 눈에 띈다.
3월 3일, 이른 아침 아들은 교복을 갖춰 입고 방에서 나왔다. 중학교 때보다 한층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양복 차림의 모습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솜털 달린 새싹 같은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고등학교를 배정받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교복을 맞추러 교복점에 가는 일이었다. 아들과 함께 교복점에 갔을 때 길게 줄 선 엄마와 아들, 딸들이 보였다.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느껴졌고 엄마들은 다른 학교 교복들을 눈여겨보는 듯하다.
긴 줄은 짧아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림이 무르익을 무렵 앞에 선 엄마가 내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는 교복 지원비 안 나오나요?”
“설마요. 나오겠지요.”
앞선 엄마는 두리번거리며 교복비 준다는 말이 없다는 것과 나라에서 무상교육비를 삭감하지 않았냐며 탄식했다. 삼십만 원 남짓한 지원비이지만 우리 같은 소시민에게는 그 금액도 한 달 생활비를 줄여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 엄마는 두루뭉술한 내 답변이 답답했는지, 이어 말했다.
“기본 교복만 사면 삼십만 원 좀 넘으려나? 그런데 그것만 살 수 있나? 뭐 더 사실 거예요?” 별생각 없이 왔던 나는 그 뭘 더 살 거냐는 질문에 진열장에 놓인 교복을 둘러봤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갈 때는 동복 치마 2개-그중 하나는 딸아이가 세탁소에 가서 줄였지만-, 블라우스 2개, 조끼 1개, 바지 1개, 재킷 1개, 하복 치마 1개, 하복 블라우스 2개, 동복 체육복 한 벌, 하복 체육복 한 벌 샀던 것 같다. 그렇게 총 70여만 원가량의 금액을 결재하면서 교복 대금 30만 원을 지원받았다. 30만 원의 작은 힘을 느꼈던 3년 전이다.
“어, 남자아이라 땀을 많이 흘릴 테니 와이셔츠는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고, 음,,”
오락가락하는 내 말에 앞선 엄마는 기어이 내 말을 중간에 채갔다.
“어쨌든 삼십만 원으로는 어림없잖아요. 저도 아들 녀석인데 모두 두 개씩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돈은 언제 나오는지 아세요?”
“글쎄요. 교육청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나오겠지요. 너무 걱정 말아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잠깐의 대화는 이제 곧 고등학생 될 아들의 교복을 맞추러 온 설렘의 감정을 차갑게 식게 했다.
무상교육은 정파를 떠나 미래의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교육투자이자 미래인재 양성의 요람이다.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제시되었고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전면 시행되었다. 특히 고교 무상교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우리나라만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전 국민적 이해와 정파를 넘어선 합의 과정에서 고비를 넘어 안착한 무상교육 정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고등학교 등의 무상교육 경비 부담에 관한 특례법’이 작년 12월 말 종료되었고 국가에서 무상교육 예산안을 99% 삭감했기 때문이다. 작년 세수 추계 오류로 교육청에 지급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대폭 줄었고, 각 시도교육청은 모아 놓은 쌈짓돈(재정안정화기금)으로 결손을 해소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 역시 교육청은 교복지원금, 입학지원금, 무상급식 등, 무상교육비를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무상교육비는 교육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교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가가 47.5%, 지방자치단체 5%, 시도교육청 47.5%를 분담해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교육복지는 백년대계로서 전 국가적 책임이고 역할이기에 모두의 노력이 깃든 품앗이다.
한편 학생수 감소로 교육교부금을 삭감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학생수는 줄지 몰라도 학교는 그대로다. 심지어 대도시의 개교하는 학교수와 학급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혹자는 삼십만 원 그 돈 얼마나 되냐고 기세 좋은 소리를 한다. 하지만 고금리, 고물가 시대에 가계부에 기록되는 삼십만 원은 큰 액수이다. 저출생으로 사라져 가는 마을이 증가하는 것도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소득계층별 출산율 분석과 정책적 함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에서 출산율이 하락하였고, 고소득층만 증가하였다고 한다. 유전자녀, 무전무자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 교육의 큰 저력 중 하나는 우리의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모든 헌신을 다해 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와 지자체, 교육청 등 교육 관련 기관 역시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가 내 자녀인 듯 교육복지에 최선의 노력을 해왔다. 소득이 없는 정책은 일몰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투자가 필요한 정책은 다듬어 고쳐가며 지속가능하게 해야 한다. 무상교육이 바로 이 같은 정책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하지만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한 투자 정책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기에 시간과 정성, 숙의와 합의가 필요한 결코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고귀한 정책이다.
아침마다 교복 입은 아들의 등굣길을 본다.
빳빳하게 다린 와이셔츠가 재킷에 숨어 아들의 하루를 함께 한다. 교복 속에 감춰진 아들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교복비 지원을 받지만, 절반은 부모의 지갑도 한몫한 교육복지가 청소년의 미래를 어떻게 키워낼지 상상해 본다. 무엇을 내주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아이들의 고귀한 미래가 바로 대한민국의 저력이 될 테니까.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교직에 입문했다. 이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거쳤다. 충남교사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충남지회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감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