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이제 너무 벌어졌어요. 비교 대상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 (흘러간) 시간은 누가 보상 해줄까요. 너무 슬픕니다.”
제주SK는 30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6라운드 수원FC와 홈경기가 끝난 뒤 구자철의 은퇴식을 개최했다.
2007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에 입단한 구자철은 제주 유니폼은 입은 뒤 한국 축구와 제주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득점왕,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구자철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역대 최연소 주장으로 선임돼 팀을 이끌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고참으로서 그라운드를 누볐다.
구자철은 독일 분데스리가, 카타르 리그에서 활약한 후 2022시즌, 11년 만에 제주로 돌아왔다. 비록 한국 복귀 후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구자철은 언제나 팀을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지역 밀착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며 연고지 제주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제주는 구자철의 현역 은퇴 후에도 아름다운 동행을 결정하며 그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임명했다.

은퇴식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린 구자철은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나 “제주 선수여서 행복했다. 제주에 입단하면서 제 축구 인생이 바뀌었다. 제2의 삶을 살게 될 텐데,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경기에서 제주는 수원에 1-0 신승을 거뒀다. 2005년생 제주 유스 출신 유망주 김준하(20)가 결승골을 넣었다. 제주 신성의 활약을 본 구자철은 “준하를 보고, 제 SNS에 ‘제주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 같다’고 올렸다. 공교롭게도 제 은퇴식인데 준하가 골을 넣었다. 잘 컸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김준하의 나이 때 구자철은 어땠을까. 데뷔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던 구자철은 “4월11일 인천 원정이었다. 사우나 갔다 왔는데 정해성 감독님이 문자로 선발이라 알려주셨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피치를 체크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라. 막상 경기에 들어가서는 훈련한 대로 잘했다”며 “프로 입단하고 새벽 운동부터 야간 운동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그런 노력들 때문에 시작을 잘했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구자철의 2막 키워드도 ‘노력’이다. 그는 “제2의 인생도 선수 때와 비슷하다. 은퇴한 지금,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1~2달 안으로 발표가 날 것 같다. 축구 팬들이 기대할 만한 일들을 시작할 것”이라며 “시작과 동시에 여러 성과들을 계속 보여드릴 계획”이라고 힘줘 말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힌트를 달라고 묻자, 구자철은 “제주 유스가 모두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일들을 지난 4달 동안 준비했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은 제대로 구축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시스템에 철학을 섞어서 제주의 유소년 육성 방향을 잡고자 한다”면서 “다들 (은퇴 후에) 노는 줄 알지만, 프레젠테이션을 정말 열심히 했다. 가진 자료만 100개에 뿌릴 자료가 100개다. 유소년 스카웃에서 관찰 자료는 다 자산이다. 새벽 2시 줌 미팅 등 열심히 하면서 바쁘게 산다. 행정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재밌다”고 답했다.

구자철은 선수 생활을 돌아보며 “포기하지 않았던 점이 제게 정말 고맙다.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 18년 동안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정말 많았다. 살짝 내려놨다면, 그냥 잊힐 선수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위기들을 잘 헤쳐 나갔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전까지 한국에 너무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며 “아우크스부르크는 0.1%도 생각하지 않던 팀인데 어쩌다 보니 그 팀에서 뛰면서 독일에 안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런던 올림픽을 언급한 구자철은 “국가대표로서 너무 순수했다. 동메달 후에 더 큰 꿈을 꿔야 할 시기에 약간 방황했다. 메달을 따기 위해 모든 집중과 열정을 다 쏟았다. 그걸 이룬 뒤, 허탈함은 표현할 수 없다”면서 “우울한 삶을 살았었다. 큰 위기였던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훈련장에서 나가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 이후 한국 축구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독단적인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의 특혜 논란, 논두렁 잔디로 대표되는 한국 축구 인프라 문제 등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구자철은 “언제 누구 눈치 보면서 얘기했나. 좋은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물론 행정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걸 지금 현역 선수들은 알 수 없다. 저도 나와보니 알겠다”면서도 “결국에는 리더가 중요하다. 축구계의 리더가 누구고, 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시스템과 룰을 만드는지가 축구판을 바꾼다. 핑계는 없다. 바꿔야 하는 건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축구와 한국 축구의 격차에 대해 감히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벌어져 있다고 한 구자철은 “정신 차리고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앞으로 후배들, 다른 세대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주=김영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