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먹고 자란 애순이, 그리고 문소리 [쿠키인터뷰]

사랑 먹고 자란 애순이, 그리고 문소리 [쿠키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주연 배우 문소리 인터뷰

기사승인 2025-04-03 06:00:12
배우 문소리. 넷플릭스 제공


“보이는 관계는 물론, 보이지 않는 관계까지도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요. 그 이야기가 작품에도 있고요.” 누군가의 애순이, 배우 문소리가 ‘폭싹 속았수다’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했다.

2일 서울 장충동2가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문소리를 만났다.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장년의 애순 역을 맡았다. 한때 “양배추 달아요” 한 마디를 못했던 문학소녀에서 자식들을 위해 좌판에서 오징어 손질도 척척 해내는 엄마가 된 애순 그 자체로서 안방을 웃기고 울렸다.

애순은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한 제주도 엄마지만, 어쩐지 귀티가 난다는 박영란(채서안)의 말처럼 반짝이는 구석을 지니고 있다. 문소리는 이러한 인물을 더할 나위 없이 그려냈지만, 명확한 캐릭터성을 짚기 힘들다는 점에서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어요. 별것 안 하는 거 같은데 무언가를 많이 하고, 색다른 캐릭터가 아닌데 미션은 어렵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데 해내야 하는 느낌이었어요. 시청자는 아이유의 애순을 따라왔고, 인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애순이는 30~40대부터 보편적인 엄마이기도 해야 해요. 특별한 엄마가 아니라서, 이 캐릭터를 연기로 구현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이 부분이 다른 작품이랑 다르기도 했고요.”

그래도 임상춘 작가의 친절한 대본 덕분에 ‘요망진 반항아’의 마음을 잃지 않은 엄마 애순이가 될 수 있었다. “글에 잘 나와 있고, 그대로 연기하면 완성되는 거였어요. 고민은 했죠. 삶의 풍파를 겪다 보면 억세지고 거칠어지잖아요.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얼마나 더 억세질 것인지가 관건이었죠. 그런데 작가님과 감독님이 원하는 애순이가 있었어요. 여전히 꿈이 있고 소녀 같은 애순이요.”

문소리가 찾은 답은 ‘사랑’이었다. “애순이를 여전히 애순이일 수 있도록 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생각하면서 대본을 읽었어요. 관식이의 사랑이더라고요. 나를 늘 최고라고, 예쁘다고, 귀하다고 해주는, 사랑이요. 집만 봐도 곳곳이 꽃이잖아요. 꽃핀, 꽃양말. 금명이처럼 애순이도 귤나라 공주처럼 떠받들어주는 그런 사랑. 그래서 애순이는 또 광례랑 다르겠구나, 이해가 됐어요.”

지인들의 경험담도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본인들은 그렇게 못 살았지만 일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고, 시집가면 집안일 해야 하고 힘들 수 있으니까 그 전에 하지 말라고도 하셨고. 꼭 결혼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도 하셨대요. 우리 엄마들이 그런 시대가 아니어서 못 살았던 거죠. 어렸을 때는 ‘엄마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만약 그 시대에 살았으면 엄마 반만큼 살 수 있었을까. 나보다 못나서 그렇게 살았던 게 아닌데. 그러면서 더 이해됐어요.”

배우 문소리. 넷플릭스 제공

 

현장에서는 장년의 관식으로 분한 박해준의 힘을 많이 받았다. 문소리는 까마득한 극단 후배에서 극 중 남편으로 마주한 박해준을 “든든한 뒷배”라고 표현했다. “어렸을 때부터 본 게 쌓여서 스스럼없이 한 이불을 덮고 누워도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해준이가 늘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줬어요. 정말 고맙죠. 정말 쉽게 나올 수 없는 호흡이었어요. 설경구와 나 정도의 호흡이었는데, 해준이와는 처음인데 스르륵 나오니까요. 귀하다고 생각했어요.”


애순으로 이어져 있고, 딸 금명으로 모녀 호흡을 맞춘 아이유에 대해서는 “자랑스럽다”고 했다. 대기실에서 스치듯 만났던 아이유는 조용하고 작은 소녀였지만, 작품에서 만난 아이유는 대단한 에너지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애기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당차다’, ‘야무지다’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엄청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계는 아니라고 봐요(웃음).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을 잘 소화하고 헤쳐나가고 있어요.”

원체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인물을 연기했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제 남편인 장준환 감독이 언급되기도 했다. 문소리는 “관식이는 아니다. 대한민국 여자들이 대부분의 남자는 학씨 아저씨(부상길)라고 결론을 냈지 않냐”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부분이 관식이와 다르지만, 변함없이 ‘예쁘다’, ‘최고다’ 해줬구나 싶더라”며 “결혼 전 내가 안 늙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대해주는 게 참 고맙더라”고 돌아봤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여럿이겠지만, 이 모든 것을 ‘살민 살아진다(살면 살아진다)’라는 대사가 관통한다. 문소리에게도 ‘그래도 살아보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을까. 그는 엄마 광례(염혜란), 해녀 이모들(백지원·이수미·차미경), 관식, 금명, 은명(강유석)까지, 그 모든 사랑이 기어코 살린 애순을 얘기하며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저 혼자 잘나서 제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를 지탱해 주고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건 다 저를 아끼고 사랑해 준 사람들이죠.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그 관계죠. 새삼 이 나이가 되니 느껴요. 결국 다 돌아온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보신 분들께도 ‘그렇게 같이 살아가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