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멸균유 들어오는데…유업계·낙농가 ‘원유 쿼터제’ 놓고 갈등

수입 멸균유 들어오는데…유업계·낙농가 ‘원유 쿼터제’ 놓고 갈등

유가공업계, 할당량 사들이는 ‘원유 쿼터제’ 현실적이지 않아
낙농가 “원유가격도 동결…유업체 국산 원유 확대 노력 해야”
정부 “쿼터제는 농가·업체 개별 계약… 정부 개입 쉽지 않아”

기사승인 2025-04-04 06:00:08
소비자가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우유를 고르고 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유가공업체들이 우유소비감소, 멸균유수입 등으로 생존을 위한 고심을 하고 있다. 특히 오는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유럽산 우유의 관세가 철폐되면 국산 유업체들의 입지는 더욱 밀려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위기감이 고조되며 유가공업계에서는 원유 할당량을 의무적으로 사들이는 ‘원유 쿼터제’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일 유가공업계에 따르면 유업체들은 내년 미국·유럽산 우유의 관세 철폐를 앞두고 해외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이 가운데 현재 시장의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원유 쿼터제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비해 우유 소비가 줄어든 현재 쿼터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5 농업전망’을 보면 지난해 국내 우유 소비량은 전년 대비 3.6% 감소한 415만3000톤으로 추정된다. 1인당 원유 소비가능량은 전년 대비 3.7% 감소한 80.8kg으로 추정된다.

멸균우유 수입도 늘었다. 보관이 용이하고 국산 우유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멸균우유의 지난해 수입량은 전년 대비 30.2% 증가한 4만9000톤이다. 한 멸균우유 수입업체 관계자는 “멸균유 수입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온라인, 마트 등 판매처를 늘리고 있다”며 “수입멸균유가​ 성장하는 이유​는 국내 높은 우유가격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국산우유 소비에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에 유업체들은 농가와 맺은 계약 물량을 축소하고 있다. 남양유업도 올해 천안공주낙농농협 등 충남지역 4개 집유조합과 맺은 원유 계약 물량을 전년 대비 17% 낮추기로 결정했다. 당초 남양유업은 원유 매입량을 30% 줄이려 했지만 조율 끝에 감축 비율을 낮춰 계약했다.

한 유가공업계 관계자는 “수입 원유는 리터당 500~600원 수준인 반면, 국내는 음용유(흰 우유)용 원유 기준 리터당 1084원”이라며 “수입 제품은 배를 타고 국내로 들어와도 더 저렴하다”고 말했다.

앞서 원유 기본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14회에 걸친 협상을 통해 8월 결정됐다.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따라 음용유용 원유는 리터당 1084원으로 동결, 가공유용은 0.6%(5원) 하락한 882원으로 결정됐다
 
다른 유가공업계 관계자는 “쿼터제 시행 당시는 우유 수요가 높았지만, 수요가 줄어든 현재 우유가 팔리든 팔리지 않든 원유를 받아야 하는 유업체는 손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원유는 3일내로 제품화하지 않으면 상하기 때문에, 남으면 멸균우유·분유 등으로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원유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 특히 관세가 철폐되는 내년은 유업계에 큰 위기가 될 것”고 설명했다.

반면 낙농가는 상황이 다르다. 원유가격도 동결했는데 정부에 예산을 지원받는 유업체가 국산 원유 사용 확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유가공업계가 물량감축으로 낙농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낙농육우협회는 성명을 통해 “유업체들은 제도참여를 통해 정부로부터 ‘국내 원유수요기반 확대 및 자급률 향상’을 명목으로 예산지원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정작 유업체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제도의 참여기준을 훼손하는 수준의 과도한 물량감축을 일제히 예고하며 농가들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 대책’을 통해 ‘원유 생산량 200만톤(가공유 포함), 유제품 자급률 48% 회복’을 청사진으로 제시했지만 유업체들은 국산 원유의 사용 확대 노력보다는 농가로부터 구입하는 물량을 감축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산 유제품은 수입산으로 대체돼 국내 낙농기반은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제도의 합목적성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정부가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쿼터제 도입 후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농가와 업체가 개별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쿼터제는) 농가와 유업체의 계약이기 때문에 정부가 중간에서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라면서 “자체적인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겨울 동안 우유 소비가 줄어 농가 상황도 어려웠을 것”이라며 “이달부터 날씨가 더워져 빙수 등 유제품 소비가 늘고 급식에도 들어가면 유제품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김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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