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면…김선미 작가 신작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 [쿠키 서평]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면…김선미 작가 신작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 [쿠키 서평]

죽은 자의 영혼이 꽃으로 다시 피어난다면
남겨진 자들의 슬픔 위로하는 성장 서사

기사승인 2025-04-15 14:08:35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 오리지널스. 336쪽.

“만약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비스킷’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김선미 작가가 독보적인 색채의 세계관을 녹인 동양 판타지 소설 ‘귀화서, 마지막 꽃을 지킵니다’로 돌아왔다. 

추리, 미스터리부터 청소년 문학, SF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을 선사하는 김선미 작가가 이번에는 일상에 가닿은 동양 판타지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취업준비생이었던 주인공이 ‘귀화서’로 입성하는 순간부터 이곳엔 우리의 일상 속 고민이 가득하다. 작가는 ‘사혼화’와 ‘귀화서’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면서도, 현재 우리 삶에 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를 놓치지 않는다.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자. 21세기 한국에서 취업난으로 고통받던 마리에게는 죽은 자들의 영혼으로 피어난 꽃 ‘사혼화’를 볼 수 있다는 비밀이 있다. 이 능력으로 수많은 오해 속에 살아왔던 어머니의 조언으로, 마리는 이 사실을 평생 숨겨왔다. 그렇지만 조선시대부터 사혼화를 찾아주고 관리해 온 ‘귀화서’의 계약직 신입 사원 모집 공고가 뜨자, 취업 시장 끄트머리에 서 있던 마리는 자신이 가진 비밀이 재능으로 인정받는 곳, 귀화서로 향한다.

그렇게 입성한 귀화서에서 마리는 사랑하는 형을 잃고 7년 동안 사혼화를 찾아 헤맨 동생, 살해당한 아내의 영혼이 어디서 피어날지 찾아다니는 남편, 연이 끊어졌던 아버지의 사혼화를 찾아낸 공양주의 사연, 가족이 아니면 죽은 이의 사혼화를 볼 수 없는 거냐며 슬퍼하는 연인, 비운의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 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을 마주한다. 그와 동시에 마리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가장 소중한 사람과 이별을 준비하며 마침내 성장한다.

작가의 말에서 김선미 작가는 “누구나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삶에 균열을 만들고 남은 사람들은 그 균열을 메운 척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적었다. 이어 “만약 사랑했던 사람의 영혼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사혼화는 그런 고민에서 탄생했다”고 털어놓는다.

가수이자 ‘안 일한 하루’를 펴낸 작가이기도 한 안예은은 추천사를 통해 “죽음이라는 단어는 두 글자만으로 순식간에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데 이 작품의 죽음은 조금 다르다”면서 “슬픈 와중에도 생동감이 넘치고, 마음에 틈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매일 장례식장에서는 새로운 이름의 고인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겪는 슬픔은 그 이후부터 시작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별 후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말이 아니라 그저 안아주길 바랄 수도 있다. 또는 행복한 모습으로 보여준 웃음만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애달프고 애틋하다. 이 작품은 상실로 인해 마음의 틈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위로를 건넨다. 곧 봄이 오고 희망은 피어난다고, 당신이 떠나간 이를 사랑했던 만큼 그 역시 남겨진 당신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깟 사랑이었다면, 죽은 자들이 꽃이 되어서라도 생전에 소중한 사람을 만나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을 겁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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