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해 효력을 정지했다. 사실상 한 권한대행의 ‘판정패’로 정리된 셈이다. 다만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지명·임명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유보한 상태로, 향후 본안 심판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헌재는 16일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가 낸 헌법재판관 지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지명 효력은 본안 판결 선고 전까지 정지된다. 오는 18일 임기를 마치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이 취임하지 못하게 되면서, 헌재는 당분간 7인 체제로 운영된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하거나 임명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자격과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재판관에 의해 헌법재판이 이뤄질 경우, 적법절차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헌재는 “향후 위헌 판단이 내려지더라도 해당 재판관이 관여한 사건에 대해 재심이 허용되지 않으면, 헌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인사의 결정이 헌재의 최종 결정으로 효력을 갖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는 헌법재판의 규범력을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결정은 본안 판단 이전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혼란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명 행위 자체가 헌법상 권한을 넘어선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한 권한대행 측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본안의 종국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핵심 쟁점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권이 있는지를 둘러싼 헌법적 해석이다. 본안 심리 결과는 조기 대선일인 6월 3일 이전에 나올 가능성과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 모두 열려 있다. 대선 전 결론이 나면 그 판단에 따라 후속 절차가 정해지지만, 결론이 늦어질 경우 당선된 새 대통령이 한 권한대행의 지명을 취소하고 헌법재판관 후보를 새로 지명할 수도 있다.
법조계는 “헌재가 불확실한 권한 행사를 사전에 제동 걸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방승주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이번 가처분 인용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상 권한을 넘는 행위를 했음을 헌재가 인정한 것으로, 헌법상 균형 원리를 지킨 중요한 결정”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정무적 관점에서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차기 정부를 앞두고 인사권을 행사하려 한 시도로도 볼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가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지켜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