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구리 50% 관세 부과’…전력·전선업계, 장기적 영향 불가피

트럼프 ‘구리 50% 관세 부과’…전력·전선업계, 장기적 영향 불가피

- 트럼프 발표에 구리 가격 급등, 단기 호재·장기 통상 악영향
- LS전선, 효성중공업 등 美 현지 생산으로 대응…“단기 영향 제한적”
- 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구리·철강·알루미늄…“美 현지 생산 확대 목적”

기사승인 2025-07-11 06:00:08
구리를 원재료로 하는 동박 제품. 배터리 음극재 소재로 쓰인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제공 

전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관세 전쟁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핵심광물 구리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구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단기적인 가격 상승은 업계 호재로 불리지만, 구리 가공품들이 관세 부과 품목으로 지정될 경우 반도체·배터리는 물론 수퍼사이클(초호황기)을 탄 전력기기 및 전선업계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기준 구리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3.12% 폭등한 파운드당 5.685달러(1톤당 1만2526달러)로 장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이며, 일일 상승률은 196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수입산 구리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영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정 품목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반도체, 의약품, 구리 등에 대해 관세 부과를 검토해 왔으며, 상무부가 조사를 마친 후 대통령에게 보고해 지난 8일 발표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구리 관세가 7월 말 또는 8월1일에 발효될 것으로 예상했다. 

구리는 전기 전도성과 열 전도성이 뛰어나 데이터센터, 반도체, 배터리(이차전지), 전력기기 등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금속이다. 한국에서 수입된 구리는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전체 수입의 3%인 5억7400만 달러(약 7874억 원) 규모로 비중이 크지 않다. 그러나 철강과 알루미늄 품목의 사례처럼 구리 가공품(중간재)에도 관세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수퍼사이클을 맞은 변압기·케이블 등 전력기기와 전선을 포함한 전력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낡은 전력 인프라를 교체함과 동시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발(發) 전력 수요 증가로 초고압 변압기 등 전력기기 수입을 늘리고 있다. 변압기에는 대당 평균 5~10톤의 구리가 들어가는데, 만약 구리 가공품 대상 품목으로 확정된다면 변압기 완제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해 현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동선, 동판, 동박, 압출 제품 등 파생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배터리, 정보기술(IT) 부품·변압기·건설자재 등 수요산업에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면서 “케이블과 전선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AI 등 첨단산업 육성에 필수적인 전력 인프라 확충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 

국내에서는 LS전선, 효성중공업, 풍산 등이 구리 관련 가공품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LS MnM은 구리 제련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LS MnM 관계자는 “직접적인 대미 수출은 거의 없으나, 관세가 향후 중간재 수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객사들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LS전선과 효성중공업은 미국 현지 생산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LS전선은 버지니아주 체사피크(Chesapeake)시에 2028년 완공될 예정인 LS그린링크를 거점으로 현지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며, 전기차용 특수권선 등은 현지 법인 수페리어 에식스로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LS전선 관계자는 “주력 제품인 HVDC(초고압직류송전)와 해저케이블의 경우 글로벌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고 미국 수출 비중도 크지 않아 영향이 제한적”이라며 “당장은 유럽시장 등에 집중하고 향후 LS그린링크를 통해 본격 대응할 예정”이라고 했다.

효성중공업 역시 주력 제품 대부분을 미국 멤피스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망 전반에 영향이 미칠 수 있는 만큼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전선업체들은 가격 변동을 계약 금액에 반영하는 ‘에스컬레이션 조항(Escalation Clause)’을 적용하고 있어 단기적으로 원가 부담을 일정 부분 고객사에서 전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관세 부과율이 50%로 매우 높은 데다, 관세 품목으로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구리 가공품이 지정될지 예상할 수 없어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홍성기 LS증권 연구원은 “구리는 철강, 알루미늄과 함께 대표적으로 미국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원자재”라며 “미국이 제조업의 주요 원자재인 구리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자국 내 구리 생산을 증가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김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