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생, 즐기는 문동혁 [쿠키인터뷰]

‘미지’의 인생, 즐기는 문동혁 [쿠키인터뷰]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 출연 배우 문동혁 인터뷰

기사승인 2025-07-22 06:00:09 업데이트 2025-07-22 14:02:22
배우 문동혁.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경구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살갑고 친근한 캐릭터의 얼굴을 지우니, 차분하고 진중한 본체가 등장했다. 물론 비슷한 점도 있었다. 섬세하고 영리하다는 것. 최근 서울 가산동 쿠키뉴스 사옥에서 만난 배우 문동혁은 “과정이 목표가 되는 순간 재밌어지는 것 같다”며 자신의 모토를 알려줬다. 사실 이에 앞서 “나름대로 좀 멋있는 말”이라고 귀띔한 그다. 어쩐지 경구처럼 귀여운 구석까지 보니, 박신우 감독의 안목이 적확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작 본인은 경구만을 염두에 두고 오디션을 보지 않았다. 짐작이야 했다지만, 정확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오디션을 보고서야 오갔다고 한다. “무슨 역할이라고 듣고 가진 않았어요. 처음에는 호수 대본을 주시더라고요. 문동혁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보려고 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세 번 정도 감독님을 뵀는데, 마지막에 경구 대본을 읽었어요. 확정됐을 때 너무 좋았죠. 되게 오래 기다렸었거든요.”

고대한 만큼 욕심을 부릴 법하지만, 문동혁은 달랐다. 더하기보다는 빼기였다. 동성애자인 경구의 성 정체성을 그의 여러 특성 중 하나로 보이게끔 한 이강 작가의 글과 같았다. “특별한 소재가 되지 않길 바랐어요. 작가님을 많이 괴롭혔죠. 자꾸 키워드를 달라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했었어요. 보는 분들이 아무도 모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상한 게 아니라 일상인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에게 어떤 습관이 있을지를 많이 고민했고, 그렇게 고민한 것들을 다 뺐죠.”

힘을 덜어낸 대신 디테일을 살리려고 애썼다. 본인은 한껏 꾸몄지만 묘하게 촌스러워 보인다거나, 미지(박보영)와 경구가 친구를 넘어 자매처럼 느껴진다거나, 사소하지만 강력한 설정들이 그 예다. 문동혁은 11회에서 경구가 미지의 성장을 확인하는 장면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고 했다.

“미지를 한강에 데리고 가서 두손리에 내려가자고 하는 신이 있어요. 그때 미지가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미지가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늘 걱정해야 하는 친구였는데, ‘이젠 정말 괜찮네’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된 거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현장에서 미지를 보니까 정말 안도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너 잘하고 있네’라는 감정을 살리려고 했고, 안심한 듯한 미소가 나왔어요.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배우 문동혁.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2012년 연극으로 데뷔한 문동혁은 2018년 JTBC 드라마 ‘SKY캐슬’로 매체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스타트업’, ‘악마판사’,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놀아주는 여자’, 영화 ‘악인전’, ‘시민덕희’, ‘세기말의 사랑’ 등으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중을 만났다. 그 연장선에 있는 ‘미지의 서울’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문동혁은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답했다.

“대본은 저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니잖아요. 작가님이 철저하게 의미를 두고 말투나 어미를 설정하셨다고 생각해서 지키려고 해요. 그런데 어찌됐든 저는 체화해야 하니까 작업 초반에 감독님, 작가님과 많이 얘기해요. 이 부분은 이렇게 가져가도 될지도 여쭤보고요. 욕심이 많아서 여러 상황을 생각하고, 현장에서 그중 몇 가지를 뽑아서 확장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미지의 서울’에서는 먼저 말씀드리지 않아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이러한 그의 노력은 ‘미지의 서울’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더 돋보일 수 있었다. 굳게 믿었던 경로에서 이탈하고 한참을 멈춰 섰던 미지, 스스로 택한 경로가 아니지만 이를 바꿀 용기가 없어 방황했던 미래, 그리고 지금이라도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나아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결말까지, ‘미지의 서울’은 특히 2030 시청자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

올해 34세인 문동혁 역시 애청자층과 같은 세대다. 실제로 미지의 서울에서 배우로서 미래를 일궈 나가고 있는 그는 이 작품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스스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깨우치고,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어온 모양새였다.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그만둬야겠다고 한 적은 없어요. 이 일로 내가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안 했던 것 같아요. 계속 연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해도 재밌으니까요. 5층을 가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고 쳐요. 그러면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되잖아요. 근데 저는 계단을 오르는 게 목표가 되는 순간 되게 재밌어지더라고요. ‘미지의 서울’이 잘되면서 이제 일이 풀리고 있다고 판단한 적은 없고요. 오히려 뭘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시기예요.”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