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금융당국 조직개편안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1급 간부들이 전원 사표를 제출한 데 이어, 금융감독원 직원들은 사상 첫 야간 집회를 예고하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오는 25일 정부조직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거센 진통이 예상된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 직원들은 이날 국회 앞에서 전 직원이 참여하는 야간 시위에 나선다.
노조는 비가 내려도 시위를 강행할 계획이다. 금감원 노조 관계자는 “날씨와 관계없이 예정대로 시위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도 “시위 일정에는 변동이 없다”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우비를 준비했다”고 부연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표결을 하루 앞두고, 반대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리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갈등의 핵심은 정부가 지난 9일 발표한 조직 개편안이다. 기획재정부를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분리하고, 금융위원회를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로 재편하는 게 주요 골자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금감원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쪼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는 금융위와 독립성 약화가 불가피한 금감원은 직원들이 조직 개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에 금감원 직원들은 출근길 ‘검은 옷 시위’를 벌이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금감원 직원들은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금융감독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정부(재정경제부)의 직접 관리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적용으로 경영·재정평가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가가 부진하면 원장 해임 건의까지 가능하다. 노조 측은 2007년 금감원이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09년 해제된 전례를 거론하며 “관치금융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감원장이 전결로 행사할 수 있었던 금융회사 주의·경고 권한이 사라지는 점도 타격이다.
학계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재편 과정에서 금융관료 조직 간의 이해 충돌이 확대될 수 있고, 금융정책의 독립성과 거시경제 조정 기능이 외려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주최 토론회에서 “이번 개편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형성된 금융 삼각 체제를 다시 흔드는 조치”라며 “금융정책의 독립성과 재정정책의 안정성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으며, 이미 높은 가계·정부·공공부채 부담 속에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인적 쇄신 등 조직 개편 사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23일 부원장 3명과 부원장보 8명 등 현직 임원 11명에 대해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임원들은 금감원장 지시에 따라 전원 사표를 냈다.
앞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역시 이달 초 1급 간부 7명 전원에게 사표를 받았다. 지난주엔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1급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 경제·금융 핵심 부처와 기관에서 동시에 최고 실무진 전원이 사표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직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금감원 임원 전원이 사표를 냈다고 해도 곧바로 후속 인사가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새 기관장 취임 시 임원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은 뒤 재신임한 전례에 비춰 임원진 교체 규모와 수위를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25일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국민의힘이 윤한홍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중심으로 금융위원회 설치법 개정안 반대에 나서면서 이날 본회의 처리는 불투명하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이 경우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2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조직법 후속 법안으로 정무위원회 법안이 9개,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이 2개가 있다”며 “지금 정무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상임위원장이 국민의힘이기 때문에 정부조직법 처리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부득이하게 신속처리안건으로 여러 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설치법은 정무위 소관 법안에 포함돼 있다.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더라도 상임위 심의에 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에 최대 90일, 본회의 부의 후 표결에 최대 60일 등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다음달 해당 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된다고 가정해도 내년 4월에야 통과돼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마무리된다는 의미다. 해당 기간 사이 금융 정책·감독 등에도 일부 공백과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