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저원가성 예금인 요구불예금이 한 달 만에 28조원 넘게 증발했다. 최근 증시 활황을 쫓아 자금이 대거 이탈하면서다. 대출금리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가 1년 만에 반등한 가운데, 이번 자금 이탈이 대출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지난 10월 말 요구불예금 잔액은 641조1873억원으로 집계됐다. 9월 말 669조7238억원에서 한 달 새 28조5365억원 급감한 규모다.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포함해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예금이다. 통상 금리가 1% 미만이다.
업계는 이번 요구불예금 감소가 계절적 요인이라기보다 최근 ‘불장(상승장)’에 따른 본격적인 자금 이동으로 본다. 실제로 은행을 빠져나간 돈은 증시로 몰려들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은 지난달 30일 기준 85조7136억원을 기록했다. 10여일 만에 5조원 이상 불어난 것이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 매입 등을 위한 대기성 자금으로 투자자들의 투자 의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같은 날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4조 8598억원으로, 한 달 새 1조519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가장 가파르게 늘었던 지난 6월(+1조876억원) 수준이다. 정부의 고강도 주택담보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이 막히자, 신용대출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요구불예금 감소가 대출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은 요구불예금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해 대출에 활용한다. 저원가성 예금이 줄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조달 비용 상승은 변동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코픽스는 자금조달 상품의 금액과 금리를 가중평균해 산출한다. 은행이 취급한 예·적금과 은행채 등 주요 수신상품의 금리가 오르면 코픽스도 뒤따라 상승한다. 이미 지난 9월 코픽스는 2.52%를 기록하며 1년 만에 반등한 상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에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 강화가 실제 대출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저원가성 예금 이탈로) 조달비용이 꾸준히 오르면 코픽스 추가 상승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예대마진의 핵심인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 그만큼 은행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며 “결국 은행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일제히 예금 금리를 올리며 방어에 나섰다. 지난 9월22일 KB국민은행은 ‘KB 스타(Star) 정기예금’ 1년 만기 최고 금리를 0.05%포인트(p) 올렸고, 지난달 6일에는 같은 상품 금리를 0.05%p 추가 상향했다. 지난달 23일 하나은행도 ‘하나의 정기예금’ 최고금리를 연 2.55%에서 2.6%로 올렸다.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17일 정기예금과 자유 적금의 1년 만기 금리를 각각 0.1%p씩 상향했다. 케이뱅크는 지난달 ‘코드K정기예금’ 1년 만기 상품의 기본금리를 2.5%에서 2.55%로 0.05%p 올렸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이번 예금금리 인상은) 하반기에 대규모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한 방어적 대응”이라면서 “기준금리 인하 추세가 이어질 경우, 자금 조달 여건도 개선돼 연말 이후에는 금리가 다시 하향 조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