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넘나들며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주식 순매도와 대미투자 불안, 미국 고용 둔화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종료와 고용둔화 신호가 확인되면 환율 상승세가 진정될 수 있고, 현 수준의 고환율이 오히려 수출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456.9원)보다 5.5원 내린 1451.4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환율 하락은 미국 연방 정부의 셧다운 해제가 임박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국 상원은 9일(현지시간) 임시 예산안을 본격 심사하기 위한 절차 표결을 찬성 60표, 반대 40표로 통과시켰다. 셧다운 장기화가 달러 강세 요인이었던 만큼, 해제 국면에서는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 재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450원대 안팎에서 ‘널뛰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야간거래에서 1460원대까지 상승했다.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글로벌 관세 공포와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4월9일 이후 처음이다.
원화는 지난주 주요국 통화 중 낙폭이 가장 컸다. 지난주 원화는 1.95%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달러화는 0.15%, 유로화는 0.23%, 엔화는 0.33%, 파운드화는 0.11% 상승했다.
원화 가치를 끌어내린 주 요인은 외국인의 순매도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3~7일)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7조1511억원을 팔아치웠다. 주간 기준 역대 최대 순매도다. 인공지능(AI) 거품론, 미국 고용 둔화 우려 등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최근 ‘반도체 수퍼사이클’로 역대 최고가 랠리를 이어가던 코스피에 충격이 컸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11월 들어 환율이 정규장에서 1450원을 돌파하며 상승폭을 확대했다”며 “연준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되는 가운데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가 겹치며 심리적 저항선이던 1440원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상단은 계엄 사태 당시 수준인 1480원대로 예상되지만, 셧다운 해제 후 고용지표 둔화가 확인되면 달러 약세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해외 투자 열풍도 환율을 밀어올리고 있다. 서학개미와 국내 기업의 ‘달러 쏠림’이 심화하면서 외화 수요가 급증한 탓이다. 올해 1~9월 거주자의 해외 증권투자 규모는 998억5000만 달러로,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액(296억5000만 달러)의 3배를 넘어섰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서학개미와 국내 기업이 미국 투자를 확대하면서 환율이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며 “수출보다 해외투자 규모가 큰 구조가 이어지는 한, 원화는 장기적으로 약세 흐름을 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대미 현금투자에 대한 불안감 역시 환율 상승을 부추긴다. 지난주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인해 3500억달러로 제시했던 투자금이 ‘연 200억달러(약 29조원) 한도’ 분할 투자로 조정됐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계가 남아있다. 매년 막대한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 원화 펀더펜탈(기초체력)의 약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다만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국내 금융시장에 치명타를 미칠 악재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반도체 가격 급등 등 수출 여건이 개선되는 상황에서 원화 약세가 오히려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고환율은 수출가격 경쟁력 강화와 달러 매출 확대를 통해 기업 이익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배당 중심 기업의 경우, 외화 수익이 주주 환원 재원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환율 상승이 물가나 금리에 미치는 충격은 과거보다 줄었다”며 “한국의 해외 순자산도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에서 외화 유동성 측면의 건전성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국내 각종 신용지표 흐름을 보면 특별한 위험 시그널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면서 “과거와 다른 외환시장의 패러다임 변화, 대내외 낮은 신용위험 및 반도체 슈퍼 사이클 등을 고려하면 현 환율 수준에 대해 과도한 우려보다는 고환율의 긍정적 효과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율 하락 전망도 나온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미 연방정부 셧다운 종료 조짐으로 성장주에 대한 투심이 회복되며, 외국인도 원화 자산을 다시 매수할 가능성이 높아 원화 강세가 예상된다”며 “환율 상승을 관망하던 수출·중공업체의 네고 물량도 시장에 재유입되면서 환율 하락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