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상 ‘동일 조건’이지만…한국 車에 새로 붙는 15% ‘부담 여전’

표면상 ‘동일 조건’이지만…한국 車에 새로 붙는 15% ‘부담 여전’

일본·유럽 등은 기존 2.5→15%, 한국만 0→15% ‘새 출발선’
관세는 낮아졌지만 구조적 격차는 남았다
국내에 125조 투자하는 현대차, 한국을 ‘마더팩토리’로 

기사승인 2025-11-17 17:36:28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4일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JFS)로 한국산 자동차에 15% 관세가 확정되면서, 한국만 기존 0%에서 15%의 새 부담을 떠안게 됐다. 대미 수출 비중이 큰 현대차·기아의 원가 압박이 커진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한국 생산기지를 ‘마더팩토리’로 다시 강화하려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관세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과 품질 혁신력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좌우된다.

이번 관세 조정은 미국의 수입차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졌다는 점만 보면 완화 효과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무관세 체계를 유지해왔던 만큼 실질적인 인상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연간 150만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고 한국에서 직접 수출하는 내연차·전동화 모델도 적지 않다. 관세를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미국 시장 특성상 원가 구조와 수익성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는 낮아졌지만 구조적 격차는 남았다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크게 확대하는 전략에는 현실적 제약이 따른다. IRA 보조금 요건, 중국산 배터리·부품 배제 규정, 물류·원자재 비용 상승 등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고, 미국 공장은 인건비와 설비 전환 비용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구조다. 신규 공장을 짓거나 생산라인을 대규모로 개편하는 데도 시간과 비용이 크게 든다. 결국 미국 현지 생산은 일부 전략 차종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방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관세에 따른 구조적 부담도 여전히 남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쟁국과 동일하게 15% 관세가 적용됐지만 한국만 무관세에서 15%로 전환되면서 부담 폭은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일본·유럽은 기존 2.5%에서 15%로 올라 12.5%포인트(p) 증가에 그친 반면, 한국은 0%에서 15%로 뛰었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출발선이 다른 관세 체제’라 표현하기도 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조정이 단기적으로는 비용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중기적으로는 비용 구조 변화와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김창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세율이 인하되면서 2026년 관세 비용은 2025년 대비 축소될 것”이라며 “하이브리드 판매 확대와 함께, 2026년 2분기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기반 신차 출시도 예정돼 있어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가격 변수는 안정됐지만 관세 체제의 기본 구조는 한국 기업에 불리하다”며 “앞으로는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상품성·기술력 중심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기아, 한국을 ‘마더팩토리’로 

이런 환경에서 현대차·기아 등은 한국 생산기지를 ‘마더팩토리’로 재정비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125조200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AI·로봇 기반 첨단 제조 전환과 그린 에너지 생태계 구축을 통해 한국을 글로벌 모빌리티 기술 허브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투자 규모는 직전 5년 국내 투자액 89조1000억원보다 36조1000억원 늘어난 수준으로, 연평균 25조원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다.

마더팩토리는 단순한 생산 거점이 아니라 신기술 개발·공정 검증·품질 표준 설정 등 글로벌 생산 체계의 출발점 역할을 한다. 현대차는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배터리 조립·열관리 공정, 소프트웨어 기반 생산 시스템 등 미래차 핵심 기술을 한국에서 먼저 완성한 뒤 이를 해외 공장으로 확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경기도 화성시 기아오토랜드에서 열린 기아 화성 EVO 플랜트 기념 행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투자 확대에도 남아 있는 현실적 한계

전문가들은 마더팩토리 전략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한계도 함께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관세 조정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경쟁국과 동일한 15% 관세가 적용됐지만, 한국은 무관세에서 15%로 전환된 것일 뿐”이라며 “출발선이 같아졌을 뿐 구조적 부담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차가 발표한 대규모 국내 투자도 결국 부품업계와 미래차 생태계를 함께 끌어올리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며 “마더팩토리 투자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도 이번 투자에 대해 “국내 고용과 투자 확대를 통해 정부와 균형을 맞추려는 성격도 있고, 연구 인력의 우수성과 의사결정 속도가 빨라진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노사 리스크와 규제 환경을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 한국 중심 전략은 부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만 0%에서 15%가 새로 붙는 구조가 유지되면 대미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포드·GM 등 미국 업체와의 경쟁력 격차는 더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현대차·기아도 미국 내 생산과 한국 중심 기술·공정 고도화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김수지 기자
sage@kukinews.com
김수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