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의 ‘특허권’으로 불리는 배타적 사용권 경쟁이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독창적 보장 구조를 만든 보험사에 한시적 독점권을 부여해 혁신을 유도하겠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에도 불구하고, 승인 건수 급증과 대형사 쏠림, 소비자 선택권 제한 논란이 맞물리며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배타적 사용권이 여전히 ‘혁신 촉진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지, 아니면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새로운 규제 사각지대로 변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손해·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사이 보험사들의 배타적 사용권 신청 건수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해 들어 생명·손해보험협회가 승인한 건수는 손해보험 42건, 생명보험 11건이다. 손보사는 지난해(37건)보다 크게 늘었으며, 롯데손해보험과 한화손해보험이 추가 심사를 앞두고 있어 최종 승인 건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생보사 역시 지난해(10건)보다 소폭 증가했다. 현재 흥국생명, 한화생명, 라이나생명 등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어 연말까지 승인 건수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배타적 사용권은 일종의 ‘보험판 특허제도’다. 이 권리가 부여되면, 해당 보험사는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8개월까지 해당 상품의 보장 내용, 급부 방식 및 서비스 등을 독점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이 기간 다른 보험사는 동일한 내용을 포함한 상품을 출시할 수 없다.
회사별로는 DB손해보험이 15건으로 최다, 생보사 중에서는 한화생명이 6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는 한화손보(13건), 삼성생명(6건)이 각각 최다였다. 독점 판매권 외에도 마케팅 효과가 큰 점도 보험사들이 배타적 사용권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최초’, ‘원조’와 같은 홍보 문구를 활용할 수 있어 단기간에 상품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치아보험을 선보인 라이나생명이 지금까지 시장 우위를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장 영향력도 크다. A사 전속설계사 김모 씨는 “특정 보장이 특정 회사에만 있으면 고객이 실제로 갈아타는 경우가 있다”며 “전속 설계사 입장에선 배타적 사용권이 ‘전쟁’ 같은 영업 현장에서 무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빠른 고령화로 보장 공백을 메우는 혁신적 보험상품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보험사들이 이 분야를 중심으로 배타적 사용권 확보 경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고령화가 가속되며 건강관리·간병 분야의 잠재 시장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며 “관련 보장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배타적 사용권을 활용한 신상품 개발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증권은 사라졌는데… 보험만 남은 ‘희귀한 제도’
배타적사용권 제도는 과거 은행권과 증권업권에도 존재했지만, 은행의 우선판매권은 2005년 이후, 증권사의 배타적사용권은 2019년 이후 사실상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은행 상품은 금리 구조만으로는 독창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보호 기간도 짧아 제도적 유인이 낮았기 때문이다.
반면 보험상품은 보장 내용·급부 방식·서비스 구성 등이 다양하고, 새로운 위험을 보장하거나 독창적인 보상 구조를 설계하는 등 계리적 분석과 아이디어가 필수적이다. 금융상품 중에서도 ‘특허권’과 유사한 성격을 띠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증권상품은 구조가 단순하고 수익 회수 속도도 빠르지만 보험은 미래 위험을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혜택을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며 “이러한 특성상 보험 가입을 촉진하고 위험관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의도로 배타적 사용권 제도가 유지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통상 신상품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배타적 사용권을 통해 일정 기간 독점권을 보장하는 것이 개발 동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실제 배타적 사용 기간이 대부분 3~6개월로 짧아 독점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금융당국과 협회는 올해 제도를 개편해 4분기부터 최대 보호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확대했다.
다만 독점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비판도 계속된다. 특정 보장을 원해도 권리를 가진 보험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어 접근성과 공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쟁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가격 상승이나 서비스 개선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학교 금융소비자학과 교수는 “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생명·건강·재산을 보호하는 공공재적 성격을 지닌 서비스”라며 “특정 보험사가 시장을 독점하게 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는 보장 내용, 보험료 수준, 사후서비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하거나 대안을 선택할 기회를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에서는 보험상품 자체에 독점적 판매권을 부여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해외는 공정 경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장려하는 구조지만, 국내는 유사 상품 진입 자체를 제한해 소비자 선택권을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점 기간 늘어나도…높은 승인률·구조적 한계 ‘여전’
제도가 갖는 순기능이 적지 않지만, 동시에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배타적 사용권을 획득하고도 판매가 조기에 중단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된다. 승인률이 지나치게 높아 제도로서의 ‘옥석 가리기’ 기능이 약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초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이의제기 절차를 통해 상당수 상품이 재승인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한EZ손해보험의 착오송금 비용 보장 담보는 1차 심사에서 “독창성 부족”으로 탈락했지만, 재심의 끝에 3개월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받았다.
독점 기간이 길다고 해서 보험사에 무조건 유리한 것도 아니다. 손해율이 높은 상품을 장기간 독점 판매할 경우 오히려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손해율 부담이 큰 상품일수록 독점 기간이 길면 오히려 손실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한계도 거론된다. 이미 시장에 다양한 담보 조합이 등장한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위험률이나 보상 방식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배타적 사용권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위험률 적용 △새로운 급부 방식 도입 △기존 상품 대비 명확한 차별성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하고, 심사위원 평균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점수에 따라 독점 기간은 3개월(80~85점), 6개월(85~90점), 9개월(90~95점), 12개월(95점 이상)로 부여된다. 그러나 실제로 독창성과 혁신성을 인정받아 9개월 이상 승인되는 사례는 손보 1.6%, 생보 6.7%에 불과할 정도로 드물다.
중소형 보험사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승인 건의 절반 이상은 대형사에 집중돼 있다. 최 교수는 “배타적 사용권이 자본과 인력이 풍부한 대형 보험사에 집중되면서 중소형 보험사는 경쟁력이 더 약화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아이디어가 있어도 개발 인력과 데이터, 심사 대응 역량이 부족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대형사에 선점당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공 데이터 기반의 상품개발 플랫폼 구축, 공동연구·공동출원 기회 제공, 심의 가이드라인 투명화 등을 통해 중소사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