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기차 전환 속도 못 따라가는 충전 인프라…‘예산 1000억 불용’ 제자리

[단독] 전기차 전환 속도 못 따라가는 충전 인프라…‘예산 1000억 불용’ 제자리

2024·2025년 연속 1000억대 불용… 충전기 확충은 왜 멈췄나
청라 아파트 화재 이후 사업 신청 급감… 충전기 보급이 멈춘 현장
123만기 목표와 1000억대 불용… 더 깊어진 괴리

기사승인 2025-11-28 06:00:05 업데이트 2025-12-09 17:33:48
최근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확정되며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제자리다. NDC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전기차 생산·보급 확대가 필수지만, 정작 충전기 확충 사업은 예산 집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충전 인프라 예산의 집행률은 68.5%에 머무르며 대규모 사업이 지연·불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2025년 11월 전기차 충전 인프라 관련 예산 집행 현황. 불용액은 2023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수지 기자  

24년 집행률 68.5%, 올해 집행률 83.3%지만 불용액은...

28일 쿠키뉴스가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전기차 충전 인프라 예산 집행 현황에 따르면 2024년 충전 인프라 예산 총 5350억7300만원 가운데 3977억2300만원만 집행됐다. 집행률은 68.5%로 1373억5000만원이 실제 충전기 설치나 운영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불용액으로 남았다. 급속·완속 설치 지원, 스마트제어, 공공급속 구축·운영비 등 대부분 항목에서 절반 수준의 집행률에 머물며, 예산이 책정됐음에도 실제 충전기 설치로 이어지지 못한 셈이다.

2025년은 집행률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1000억 이상의 불용액이 발생했다. 2025년 11월 기준 예산 6506억6800만원 중 5421억1800만원이 집행돼 집행률은 83.3%까지 올랐다. 그러나 불용액은 여전히 1085억5000만원 규모로 남아 있고, 집행률 상승이 곧바로 실질적 충전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부 탈탄소녹색수송혁신과 관계자는 “현재까지 남은 불용액 1085억원 중 추가로 사용될 금액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불용액에 대해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보조 사업 신청 저조로 인한 미교부액”이라 밝혔다. 불용액에 대해 관계자는 “지난해 8월 인천 청라에서 발생했던 전기차 화재 이후 공동주택 등 현장에서 충전기 설치 신청이 크게 줄었다”며 “이런 신청 저조가 집행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 설명했다.

충전 중인 전기차. 김수지 기자 

연간 10만기 확대도 안 되는데, 2030년까지 123만기? 

중장기 목표와 현실 사이의 괴리도 문제다. 정부는 2030년까지 ‘123만기 구축’이라는 대규모 충전기 보급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 환경부는 충전기 가동률·이용률에 대한 기초 데이터조차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지역이 과잉이고 또 부족한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목표만 설정되다 보니, 정책 방향과 현장의 수요가 어긋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충전 인프라 구축이 지연되는 원인은 단일하지 않다. 환경부가 밝힌 것처럼 올해는 인천 청라 화재 이후 공동주택의 설치 신청이 급감하면서 보조사업 자체가 움직이지 못했고, 전기차 수요 둔화와 충전 사업자의 초기 투자 부담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정부 기준과 시장 현실이 맞물리지 않으면서 완속·스마트제어 충전기 보급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된다. 예산 자체보다, 편성된 예산이 실제 충전기 설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더 큰 문제로 드러난 셈이다.

전기차 확대는 NDC 달성의 핵심이며, 충전 인프라는 그 전제 조건이다. 내연기관 감축과 전기차 확대를 목표로 내걸었지만, 충전 인프라가 지금 속도로 머문다면 전환 속도는 목표치를 따라잡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충전 인프라 확충이 더딘 배경에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모빌리티학과 교수는 “예산이 남는 것은 잘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정부가 기업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을 강제하면서 충전기 자체가 시장에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누적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 보급은 아직 과도기 단계로 소비자 불안과 정책 불일치가 동시에 존재한다”며 “충전 인프라 정책을 전면 재설계해야 전기차 전환 속도가 목표치를 따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위상 의원도 충전 인프라 전략의 전면적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위상 의원실은 “기후위기 시대 무공해차 보급사업은 매우 중요한 과제지만, 현재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예산과 실적 모두 목표 대비 격차가 존재하고 보급 속도에 비해 구축이 후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인프라 전략은 단순한 보급 목표나 단일 차량 유형 중심이 아니라, 전기·수소·플러그인 등 복합적인 친환경차 수요와 이용 행태를 반영한 종합적이고 기술 중립적인 방향으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며 “시설 구축뿐 아니라 가동률·이용률·민간 참여 확대까지 고려해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지 기자
sage@kukinews.com
김수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