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급정거로 뇌진탕…치료비 받으려면 고소?

버스 급정거로 뇌진탕…치료비 받으려면 고소?

준공영제 서울시, 버스 내 사고 대응 ‘가이드라인’ 부재
“중재 어려워도 안전 기준 강화는 필요”

기사승인 2025-11-27 15:00:11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시내버스 급정거로 뇌진탕을 입은 시민 A씨가 치료비를 받기 위해 결국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서울시의 사고 대응 체계가 사실상 ‘부재’ 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는 ‘준공영제의 한계’를 이유로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세금이 투입되는 구조인 만큼 최소한의 기본 지침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고 발생부터 치료비 지급까지…결국 ‘고소’로 해결

A씨가 다친 시점은 지난해 12월, 신사역 사거리 인근이었다. A씨가 승차하자마자 출발한 버스는 교차로 진입 직전 급정거했고, A씨는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사고 직후부터였다. 버스 기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어렵게 연락한 버스회사 역시 “보험 처리는 어렵다”며 사실상 연락을 끊었다. 서울시는 “버스회사는 민간사업자라 개입할 수 없다”며 중재를 거부했다.

결국 A씨는 직접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에서야 치료비를 받을 수 있었다. A씨 측은 “시가 세금을 지원하는 구조인데 관련 매뉴얼조차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준공영제 뒤에 숨겨진 ‘사고 대응 사각지대’

서울 시내버스는 시가 운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준공영제로 운영된다. 시와 버스회사가 버스를 공동 관리하는 구조지만, 정작 안전 문제에서만큼은 시의 역할이 ‘뒷짐’에 가깝다. 승객이 다쳤을 때 회사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면, 승객은 결국 고소라는 고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에 방치되는 셈이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관계자는 “기사 과실에 따른 승객 사고 대응 지침은 따로 없다”며 “민원은 들어오지만 경찰 조사나 법원 판단에 따라 결과가 달라 개입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이미지. 유희태 기자

조례상 의무는 잘 지켜지나?…사고 현황 파악도 미흡 

문제는 조례에 규정된 서울시의 의무조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시내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 조례’는 △시내버스 난폭운전 등 안전 운행을 지속 점검할 의무 △교통법규 위반·교통사고 및 시내버스 내 안전사고 현황을 파악해 예방 대책을 마련할 의무 등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사고 현황 파악 의무는 2019년 사고 예방을 위해 개정된 조항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기사 과실로 인한 승객 사고 현황, 사고 후 회사·기사의 대응 현황을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자료는 한국교통공단에 요청한다고 했지만, 공단 역시 해당 자료를 관리하지 않았다. 즉, 사고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태다.

64개에 달하는 서울 시내버스 회사들은 각자 사고 대응 지침을 운영 중이다. 서울시 차원의 통일된 기준이 없어 회사마다 대응 수준이 다르다. 결국 승객은 사고 대응도 사실상 운에 맡겨야 하는 구조다.

또 2020년 도입된 ‘서울시민안전보험’이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 중 사망하거나 ‘중대한 후유장애’ 발생 시에만 대상이 된다. A씨처럼 뇌진탕 등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전문가 “중재까지는 무리…그러나 가이드라인은 시 책임”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직접 사고 분쟁에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기본적인 안내 체계는 시가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중재는 어렵더라도 사고 발생 시 시민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며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때 시민이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렬 대구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도 “서울시 보조금이 있어 버스가 운행되는 만큼 안전 책임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에 대해 “현장 점검을 통해 운행 실태를 평가하고 있다”며 “기사 과실로 발생한 사고가 확인될 경우 회사 평가에 반영해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지영 기자
surge@kukinews.com
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