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몸을 낮췄다. 조선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탑을 쌓는 대신 기와지붕을 땅과 나란히 눕혔다. 정전과 영녕전은 우리 목조건축 가운데 가장 긴 건물로 꼽히지만, 그 길이는 수직이 아닌 수평이다. 층을 더하는 대신 기둥을 일렬로 세웠고, 장식은 절제해 단조로운 처마선과 너른 마당을 남겼다. 세계유산 등재 평가 역시 종묘의 가치를 ‘낮은 지붕과 여백, 숲과 하늘이 이어진 수평적 경관’에서 찾는다.
위 사진은 바로 그 ‘낮음’의 미학을 한눈에 보여주는 연속된 지평선이다. 아래로는 돌바닥과 제례 동선인 신로, 담장과 종묘정전남신문이 놓였고, 그 위로 나무숲이 층을 이룬다. 더 높은 시선에는 세운지구와 도심 빌딩이 포개지고, 맨 위로는 남산과 남산타워가 맞물린다. 단지 바라보는 높이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일상적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도심이 드러난다. 종묘와 도심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 그 거리감이 한 장면 속에 선명하게 잡힌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의 용적률을 대폭 상향하는 내용의 변경 고시를 발표했다. 계획대로라면 종묘에서 직선거리 약 180m 떨어진 지점에 최고 141.9m(40층) 규모의 고층 빌딩이 들어선다. 기존 추진안의 71.9m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아지는 셈이다. 세계유산인 종묘의 낮은 지붕선과 새 건물의 수직선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조정할지 본격적인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훼손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유네스코도 지난 15일 “종묘 앞 개발사업에 대한 위험 신호”라며 세계유산영향평가(HEIA) 실시를 권고했다. 이는 세계유산 주변에서 대규모 개발이 추진될 때 사전에 유네스코에 알리고 영향평가를 받도록 한 절차다. 향후 유네스코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지 않을 경우,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서울시는 낙후된 도심을 정비하고 녹지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초고층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는 서울 도심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2006년 세운상가와 주변 지역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의회 정례회에 출석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렇게 압도적으로 눈 가리고 숨 막히게 하고 기를 누를 정도의 압도적 경관은 전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