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국내 태양광·풍력 산업 생태계는 중국산 저가 공세와 기술 표준 잠식으로 사실상 ‘기술 종속’ 단계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품 공급망이 중국 중심으로 고착되면서 단순 가격 경쟁력 문제를 넘어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위험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부품 잠식 넘어 ‘표준 장악’…“전력망 통제권 넘어갈 판”
2일 관련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기반은 이미 중국산 의존도가 절대적 수준에 이르렀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태양광 패널의 핵심인 ‘셀’의 국산 생태계는 이미 괴멸 상태다. 2019년 50.3%였던 국산 셀 점유율은 올해 4.9%로 추락한 반면, 같은 기간 중국산 셀 점유율은 38.3%에서 95.1%로 폭증했다. 알맹이(셀)는 중국산이 장악하고, 국내 기업은 이를 수입해 조립만 하는 ‘껍데기 공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제2의 태양광으로 불리는 해상풍력도 사정은 비슷하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풍력발전기용 주요 부품인 날이 붙은 휠과 체인 등의 경우 최근 5년간 수입된 물량 중 99.9%가 중국산이었다.
풍력 발전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전동기와 발전기용 부품 역시 중국산 비중이 84.6%로 압도적이었으며, 독일(11.6%) 등 유럽산 부품은 소수에 그쳤다. 클러치와 샤프트 등 동력 전달 부품 또한 중국산이 64.5%를 차지해,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풍력 산업조차 공급망의 뿌리부터 중국에 종속돼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미국 에너지부가 지난 5월 “중국산 인버터는 전력망을 원격 차단할 수 있는 ‘킬 스위치(Kill Switch)’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너지 산업의 높은 중국 의존도가 국가 전력망 해킹이나 백도어 문제 등 국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홍근기 고려대 교수는 “전력망 해킹이나 백도어(Backdoor) 문제는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면서도 “다만 FTA 체제 하에서 시장에서의 노골적인 배제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무늬만 국산’ 택갈이 기승…제도 허점이 키운 구조적 취약성
태양광 분야에서는 해외,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 저가 인버터에 국내 브랜드 라벨만 붙여 원산지와 인증을 바꾸는 이른바 ‘택갈이’ 관행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태양광 모듈의 국산 점유율은 41.6%를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이 중 상당수가 ‘무늬만 국산’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상 허점을 이용하면 사실상 중국산 반제품을 들여와 간단한 조립만 거쳐도 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국산화 판정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KS 인증 △대외무역법상 원산지 기준이 핵심이다. KS 인증은 품질 기준 충족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이고, 원산지 기준은 총제조원가 중 국내 발생 비용이 일정 비율을 넘으면 국산품으로 인정한다. 문제는 이 두 장치가 실제 생산 기여도와 기술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거의 완성된 반제품을 들여와 케이스만 바꾸거나 나사 몇 개만 조여도 ‘국산’으로 통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이런 ‘택갈이’ 제품이 공공기관 발주 사업까지 따내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KS 인증에서 중국 업체 비중이 이미 48.9%에 달한다. 사실상 KS 제도 자체가 국산화 기준으로서 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뒤따르는 이유다.
고석준 대한태양광발전사업자협회 대외협력국장은 “중국산 제품이 국산과 성능은 비슷하면서도 가격과 A/S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럼에도 의무화된 제도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국산 인증 제품을 도입해야 하는 업체들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공세를 넘어 품질 향상으로 KS 인증을 뚫고 유럽 기술 표준까지 선점하는 동안, 국내 R&D 투자는 대폭 축소됐다. 태양광 R&D 핵심인 ‘탠덤 전지 조기 상용화’ 예산은 2022년 341억원에서 2025년 238억원으로 약 30% 삭감됐고, 전체 태양광 R&D 예산 또한 같은 기간 926억원에서 526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가격 경쟁력뿐만이 아닌 ‘기술 호환성’ 때문에 부품 단순 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기술 스펙이 맞아야 해서 바로 국산 부품을 택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는데, 정부는 보급 속도에 매여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안은 아직 합의되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부가가치 중심 인증이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의 우회로가 될 수 있다며 생산 역량과 기술 혁신 수준을 엄밀히 측정해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고석준 국장은 “중국이 장악한 범용 하드웨어보다 운영·관리(O&M) 기술 강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풍력발전, 세금 유출 더 심각…정부 “공급망 안정화로 대응”
해상풍력은 규모가 큰 만큼 중국 의존이 더 큰 재정적 리스크로 이어진다. 해상풍력 단지 1기가와트(GW)를 건설하는 데 약 8조원이 투입되는데, 핵심 기자재가 외국산일 경우, 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고스란히 해외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풍력 발전은 덩치가 커서 한번 중국산으로 도배되면 되돌리기가 불가능하고, 유지보수마저 중국에 의존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낸 전기요금으로 중국 기업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수 있어 정부로서도 정무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는 “정부가 입찰 평가 시 ‘공급망 안정화’ 항목을 통해 국산 기자재 사용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터빈의 경우 운영 실적(Track Record) 등을 꼼꼼히 따져 중국산 완제품의 진입을 사실상 막고 있다”면서도 “다만 베스타스(Vestas)나 지멘스(Siemens) 같은 글로벌 서구권 기업들도 가격 경쟁력과 공급망 이슈 때문에 일부 내부 부품은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당장 올 상반기부터 안보 평가 지표를 신설해 국내 R&D 실증에 우대 가격을 적용하는 ‘공공주도형 해상풍력 입찰’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생태계 복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에 풍력업계 관계자는 “국내 부품 사용 장려를 통해 해상풍력 공급망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보여주고 있다”며 “이에 따라 개별 업체 입장에서도 부품 국산화율을 높여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에는 풍력 블레이드의 내구성 시험, 낙뢰 내성 시험 등 다양한 테스트를 거칠 만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한 꾸준한 R&D, 기술 개발 투자가 절실하다. 이 교수는 “기술적으로 자립 가능한 핵심 분야와 불가피하게 수입해야 하는 분야를 명확히 구분해, ‘할 수 있는 분야’에 인센티브를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묻지마 국산화’는 불가능…“속도 조절 필요”
전문가들은 결국 ‘국산화 속도전’보다는 국내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 범용 부품 시장에서의 출혈 경쟁보다는 안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질적 성장’의 발판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산 장비의 ‘규모의 경제’, 락인(Lock-in) 효과, 중국 규격의 국제 표준화 등 구조적 문제도 쉽게 해소하기 어렵다. 거대한 내수시장 기반의 ‘규모의 경제’로 저가 공세를 펼치며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했고, 그 결과 중국의 기술 규격(스펙)이 곧 ‘국제 룰’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중국이 전 세계 공급망을 장악하면서 자신들이 만드는 규격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비용 상승은 곧 산업 전반의 제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기에 일반 업체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무리하게 비싼 국산 부품 사용을 강제할 경우 국민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시장 논리를 무시한 속도감 있는 규제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이원화 전략을 해법으로 제언했다. 민간 시장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개방하되 기술 혁신 관련 투자를 강화하고,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 시장'은 안보 논리를 통해 확실한 국산화 방어막을 쳐야 한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 입찰에서라도 ‘공급망 안정성’이나 ‘보안’ 항목의 배점을 대폭 상향하는 방식으로 국산 기자재 사용을 유도해야 한다”고 짚었다.
홍 교수는 “물량 공세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며 “‘고부가 기술’에 예산을 집중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는 질적 성장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