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진료 확대가 필수의료 기반을 흔들고 국민건강보험 재정까지 압박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5세대 실손보험’ 도입을 계기로 비급여 관리 강화와 공·사보험 정보 연계 등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8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공·사 건강보험 상생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의료진의 비급여 진료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분야의 공급 기반이 취약해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비급여 진료는 의료기관이 가격과 진료량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수익성이 높은 구조다.그는 “비급여 진료비는 전년 대비 약 15% 급증하며 전체 진료비 상승을 이끄는 주요 요인”이라며 “현재 추세가 지속되면 2064년 이후 33년간 국민건강보험의 지출이 수입을 크게 웃돌며 재정 적자가 구조적으로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택 비급여 증가도 문제로 꼽힌다. 김 연구위원은 “병 치료에 필수적이지 않은 선택 비급여의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비급여 규모가 크거나 증가 폭이 큰 상위 10개 항목이 전체 보험금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비급여 증가와 맞물려 실손보험의 재정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전체 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 합산 위험손해율은 약 120%, 합산비율은 110%를 넘었다.
공·사보험 정보가 단절돼 있는 점도 재정 누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감사원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간 상병 코드 불일치율은 약 39%에 달했다. 실손만 청구되고 건강보험 청구는 누락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는 보험사기나 이상 청구로 의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정책당국은 비급여 관리 강화와 실손보험 구조개혁을 통해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년 도입되는 5세대 실손보험은 중증 보장은 강화하되, 과잉 우려가 큰 비급여 보장은 대폭 축소하는 방향이다.
다만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 연구위원은 “구조개혁으로 불필요한 의료비는 줄어들 수 있다”면서도 “의료인 유인수요 등 구조적 요인 때문에 기대만큼의 개선이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인 유인수요는 의료 공급자가 전문지식을 이용해 환자를 설득, 필요 이상의 진료를 받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단순한 상품 개편만으로는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비급여 영역에 대한 실효적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공·사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로 비급여 정보 비대칭 해소를 꼽았다. 그는 “의료기관이 비급여를 시행할 때 환자에게 근거 수준·효과·위험성을 명확히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 시 행정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급여 중 주요 항목을 ‘관리급여’로 지정해 기준치를 초과한 진료는 전액 본인 부담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과잉 진료를 억제하기 위한 장치다.
공·사보험 정보 연계 기반 마련도 필수라고 했다. 그는 “법적 근거 부재로 정보 연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상설 협력기구와 기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비급여 가격과 진료 기준을 규율하는 법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사보험 안정 위해 ‘요율 조정’ 필요”
이날 토론에서는 실손의료보험이 재무 건전성을 지속되기 위해서는 ‘적정 요율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는 연간 보험료를 2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제한하는 구조다.
임학빈 DB손해보험 본부장은 “실손보험이 앞으로도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적정 요율 유지가 필수적”이라며 “이는 요율의 과도한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연간 ±25% 조정 한도 자체도 핵심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운을 뗐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면 물가 안정기 등 보험료 인상이 필요했던 시점에도 25% 인상분을 모두 반영하지 않았던 시기가 몇 년간 있었다”며 “세대 전환 시 해당 세대의 위험률을 따라 조정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사후 조정을 5년, 3년씩 미루면서 현재의 ‘갭’이 누적됐다”고 지적했다.
임 본부장은 “요율을 정교하게 조정해 왔다면 이론적으로 지금쯤 손해율은 이미 100%에 수렴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조정 지연이 누적되면서 현재의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고, 이런 이유 때문에 업계가 요율 조정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과거의 25% 원칙을 어기자는 것이 아니라, 공·사보험 체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사보험의 재무 건전성이 확보되려면 지금 한 번쯤은 적정 수준에서 요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요율이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면 앞으로 소비자들이 ‘보험료는 왜 계속 오르기만 하느냐’고 비판하는 상황에서도 일정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