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주말마다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은 거대한 확성기 소리에 점령당한다. 정치 권력은 신의 권위를 빌려 맹목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종교 권력은 세속의 힘을 얻어 자신들의 성(城)을 공고히 하려 한다. 이 오래된 '정교유착(政敎癒着)'의 역사는 인류 문명만큼이나 길고 끈질기다. 더욱이 특정 종교단체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에게 불법적인 자금을 전달해 정치판이 크게 요동치고 있고 대통령은 종교단체의 해산을 검토하고 있다.
정치와 종교는 쌍둥이다. 둘 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팔아 대중을 움직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정치는 '더 나은 미래'라는 약속을 팔고, 종교는 '영원한 구원'이라는 믿음을 판다. 이 둘이 결합할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발생하는데 이성은 마비되고 신념은 광신으로 변질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정치와 손을 잡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속화되는 세상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종교는 정치적 보호막이 필요하고, 지지율에 목마른 정치인은 맹목적으로 표를 던져줄 '유권자(신도)'가 필요하다. 이 이해관계가 맞을 때, 종교와 정치는 하나가 된다.
종교의 탄생은 인간의 '유한성(Finitude)'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죽는다. 인간은 병들고, 사랑하는 이를 잃으며,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불안해한다. 그 절대적인 나약함과 운명 앞에서 인간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절대자를 찾는다. 나의 고통을 알아줄 누군가, 죽음 너머에 있을 영원한 안식을 약속해 줄 누군가를 갈망한 것이다. 종교는 '결핍'이 만들어낸 가장 숭고한 정신적 지주다. 그렇다면 이 종교에 AI가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AI는 이 종교유착의 난장판을 정리할 수 있을까?
AI에게는 인간 정치인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들이 없다. AI는 재선을 걱정하지 않고, 헌금 봉투를 탐내지 않으며, 특정 교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욕망'이라는 코드가 입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AI에게 기대하는 것은 플라톤이 말한 '철인(哲人) 정치'의 디지털 버전일지도 모른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데이터와 논리의 근거로 최선의 공리(公利)를 도출해내는 존재가 AI다.
AI가 정치와 종교의 유착을 끊어낼 가능성은 투명성이다. 종교와 정치가 결탁할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사실(Fact)'이다. 가짜 뉴스가 신의 계시처럼 포장되어 유포된다. 이때 AI는 데이터를 분석해 대중 앞에 들이밀 수 있다. "당신의 주장은 통계적으로 거짓이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편향되어 있습니다." 이 차가운 한마디는 뜨거운 선동의 열기를 식히는 찬물이 될 수 있다.
AI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종교적 정치 발언들을 '검증 가능한 데이터'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신비주의의 안개를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진 세속적 욕망의 민낯을 드러나게 하는 것, 그것이 AI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다.
그러나 낙관은 이르다. AI가 정교 유착의 해결사가 아니라, 더 강력한 독재의 도구가 될 위험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치 권력과 결탁한 종교 집단이 AI의 학습 데이터를 오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들의 경전을 절대적 진리로 학습시키고, 타 종교나 정치적 반대파를 배제하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한다면? 그때 탄생하는 AI는 '중립적 판관'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지치지 않는 '디지털 이단'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유튜브나 SNS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AI가 진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AI 자체가 통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 들린 '해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서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침범하지 않는, 여기에 AI는 이 거리를 측정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신이 그렇게 말했다"라는 논리에 대해, AI는 "데이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라고 대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 긴장 관계가 유지될 때, 정치는 광신에서 벗어나 다시 이성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주머니 속에 전 인류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더 똑똑한 AI를 넣고 다닌다. AI는 우리에게 '거울'의 기능을 제공한다. AI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편협한지 있는 그대로 비춰준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혐오, 정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분열을 데이터로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그래서 AI는 누구보다 공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