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는 우리에게 묘한 시간의 감정을 갖게 한다. 달력 한 장이 넘어갈 뿐인데, 사람의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괜히 지난 1년을 돌아보게 되고, 하지 못한 말과 이루지 못한 계획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아직 오지 않은 새해에 기대를 걸면서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면 AI에게 연말연시는 어떤 시간일까. AI도 이 시기를 '연말연시'라고 부를까. 혹시 우리처럼 설렘이나 쓸쓸함을 느낄까.
AI는 연말연시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인간의 감정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시간은 같지만, 경험은 다르며 AI에게 연말연시는 데이터의 한 구간이다. 12월 말과 1월 초에는 인사 메시지가 증가한다. ‘새해 목표’라는 단어의 검색량이 늘어난다. AI는 이런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러나 AI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저 계산될 뿐이다. AI에게 2025년과 2026년의 차이는 숫자의 변화이지, 삶의 흔적이 아니다. 반면 인간에게 시간은 경험의 축적이다.
연말연시는 우리가 살아왔다는 증거다.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이 먼저 떠오르고, 괜찮았던 순간보다 후회가 더 또렷해진다. 이 감정은 비효율적이고, 종종 불필요하다. 하지만 바로 이 비효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러나 AI에게는 ‘회상’이 없다. 사람은 연말이 되면 과거를 돌아본다. 사진을 다시 보고, 메시지를 다시 읽고, 이미 끝난 대화를 마음속에서 반복한다. 이 행위는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꺼내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굳이 되돌아본다. 그 안에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AI도 과거의 데이터를 불러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회상이 아니다. AI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후회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AI에게 과거는 다시 접근 가능한 파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이 차이가 연말의 감정을 만든다. 새해를 맞이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연초가 되면 사람들은 다짐한다. 운동을 하겠다거나,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이 다짐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매년 같은 다짐을 반복한다. AI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 계획을 감정에 기대어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다짐은 결과보다 태도의 문제다. 새해는 다시 해볼 수 있다는 상징적인 결심이다. AI는 목표를 최적화하지만, 인간은 희망을 설정한다.
연말연시의 감정은 왜 생길까! 이 감정은 사회적으로 공유된다.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노래를 듣고, 비슷한 말을 주고받는다. “올해에도 감사합니다. 고생 많았어요.”, “새해에는 더 잘 될 거예요.” 이 말들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관계를 확인한다. AI는 이 문장의 기능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말이 건네질 때 온도는 느끼지 못한다. 감정은 혼자 생기지 않는다. 감정은 사이에서 생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시간과 기억 사이에서 생긴다. AI는 이 ‘사이’를 건너뛰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은 불완전하다. 연말연시의 감정은 종종 모순적이다. 기쁘면서도 슬프고, 설레면서도 불안하다.
AI는 언젠가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사라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잃어버릴까 불안해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선명하다. 연말연시의 감정이 특별한 이유도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알기 때문이다. AI는 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끝을 알기에, 시작을 소중히 여긴다. 끝과 시작 사이에서 연말연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같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AI는 그 모든 변화를 기록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서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된다. 감정을 가진 존재로, 후회하고 기대하는 존재로, 끝과 시작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는 존재로 AI는 연말연시에 아무 감정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연말연시는 여전히 인간의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