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 베트남서 별세…응급치료 후 회복 못 해

이해찬 전 총리 베트남서 별세…응급치료 후 회복 못 해

베트남 출장 중 심정지
충남 청양서 태어나…최연소 의원으로 국회 입성
지역구로만 7차례 당선
정치권 안팎서 ‘민주화 운동 세대 대표적 정치인’ 평가

기사승인 2026-01-25 18:30:06 업데이트 2026-01-25 21:44:37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 출장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1990년 6월 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시절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를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베트남에서 치료를 받던 중 25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민주평통에 따르면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베트남 호찌민을 찾았다가 지난 23일 귀국 절차를 밟던 중 공항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현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 등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현지 시각 25일 오후 2시48분 눈을 감았다. 유가족과 관계기관은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협의 중이다.

이 전 총리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조정식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로 급파했다. 이재정·김현·이해식·최민희 의원 등 그와 가까운 더불어민주당 인사들도 잇따라 현지로 향했지만, 끝내 병상에서 일어서지는 못했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 용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거쳤다. 유신 시절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뤘다. 이후 서울 신림동에서 사회과학서점 ‘광장’을 운영하며 재야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정계 입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로 있던 시기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당시 최연소(36세) 의원으로 당선된 뒤, 18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지역구로만 7차례 당선되며 단 한 번도 선거 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지난 2016년에는 세종으로 지역구를 옮겨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시 금배지를 달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돼 고교 평준화 확대, 학력고사 폐지와 수능 도입 등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제36대 국무총리를 맡아 ‘책임총리’로 불렸고,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구상을 주도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 당 대표와 상임고문 등을 두루 역임하며 당내 최고 전략가로 꼽혔다.

2018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뒤 2020년 4·15 총선에서 여당의 180석 확보를 이끌며 민주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통하는 고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였던 2024년 총선에서도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 전략을 총괄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청와대는 당시 그를 “국회의원과 주요 공직을 두루 거친 정치계 원로이자 통일 문제에 오랜 기간 전념해온 인사”로 소개하며, 대북·통일 정책 전반에 대한 자문 역할을 기대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22년 고인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라고 밝히는 등 각별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고인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민주화 운동 세대의 대표적 정치인, 그리고 여권을 대표하는 전략통으로 평가해 왔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임성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