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려를 지킨 횡성의 자랑 '조충 장군'

[기고] 고려를 지킨 횡성의 자랑 '조충 장군'

장신상 전 횡성군수

기사승인 2026-01-29 19:18:54 업데이트 2026-01-29 20:08:37
장신상 전 횡성군수.

KTX 횡성역 뒤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 횡성읍 정암리다. 이 마을에 세덕사(世德祠)라는 사당이 있는데 횡성 조 씨의 중시조인 조영인과 그의 아들 조충, 그리고 손자 조계순의 3대 영정을 모신다. 원래는 공근면 상동리 삼원수골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1988년 세거지인 이 마을에 다시 건립했다.

3대가 모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분들인데 그중 조충 이란 인물은 고려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갖고 있다. 이런 역사를 잘 모르면 그냥 어디나 흔히 있는 문중의 훌륭한 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가벼이 넘겨 버릴 수 있다. 그런데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고 있다면 고려 시대에 횡성 출신의 엄청난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고려사’에 나오는 그에 관한 이야기다.
조충(趙冲)의 자는 담약(湛若)이며 시중(侍中) 조영인(趙永仁)의 아들이다. 태어난 지 1개월 만에 모친이 죽었는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몹시 슬퍼하며 추모하니 집안에서 효동(孝童)이라 칭찬하였다. ... 널리 알면서도 기억력이 뛰어나 전고(典故)를 외우고 익혔다. 희종(熙宗) 때 국자대사성 한림학사(國子大司成 翰林學士)로 제배되니 한때 전적(典籍) 중 많은 것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제배되었다. 고종(高宗) 3년(1216)에는 추밀부사 한림학사승지 상장군(樞密副使 翰林學士承旨 上將軍)으로 승진하였다. 문신이 상장군을 겸하는 것은 문극겸(文克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가 도중에 폐지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왕이 조충의 재주가 문무를 겸하였다 하여 특별히 제수한 것이었다.

한림학사는 왕명을 직접 받들며 왕에게 강의하는 등 핵심 임무를 맡았으며, 최정예 관리들이 근무하는 기관으로 승지는 그 수장이다. 상장군은 군부의 최고 지휘관이다. 문관으로서 무관 최고위직까지 겸한 조충 이야기는 무려 94곳에 나온다. 대부분 거란 여진족을 패퇴시킨 전쟁사이다. 그리고 몽골군과 싸움에서는 지략과 외교적 능력도 발휘된다.

문무를 겸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조충의 승승장구하는 전공의 명성이 날로 높아져 가자 당시 무인시대 절대권력자 최충헌의 경계를 받기도 했다. 조충의 이런 능력에 대한 명성을 당연히 부담스러워했다. 1219년에 나오는 ‘고려사’ 이야기다. 

당시 조충(趙冲)이 거란군을 격파하고 개선하였는데, 최충헌이 그 공을 시기하여 영아례(迎迓禮)를 중단시키고는 사사로이 죽판궁(竹坂宮)에서 장수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모든 관료에게 은을 거두어 그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처음에 조충이 서경(西京)에 머무르려고 했는데, 그의 공이 제일 높았기 때문에 최충헌이 혹시 변란을 일으킬까 걱정하여 서신을 보내 빨리 돌아오게 하였다.

조충 장군이 태어난 삼원수골과 아버지 조영인이 시를 지었다는 선강정 터에 삼원수의 이야기들이 내려오고 있다. 우리에겐 이런 이야기를 대한민국에 알려야 할 책무가 있고 군민 모두가 제대로 알면 그게 횡성의 경쟁력이 아닐까 한다. 횡성만이 가진 소중한 역사문화 스토리로 횡성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 품격있는 문화관광 자산이 되길 기원한다. 
윤수용 기자
ysy@kukinews.com
윤수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