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도박 등 민생침해 범죄와 가상자산을 악용한 지능적 자금세탁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25년 만에 전면 개편한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범죄 의심 계좌를 묶어두는 ‘의심계좌 정지제도’ 도입과 가상자산·전문직 등 그간 규제 사각지대에 놓였던 영역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5일 ‘AML·CFT 정책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2001년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도입 이후 25주년을 맞이해 추진되는 가장 포괄적인 개편안이다.
이형주 금융정보분석원장은 “특정금융정보법상 자금세탁방지 제도를 도입한 지 25년이 지남에 따라 초국가범죄 등 새로이 당면한 자금세탁 현안에 대한 대응역량의 강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주요과제는 △중대 민생·초국가범죄 대응 역량 강화 △가상자산 자금세탁 방지체계 보완 △금융회사등의 자금세탁방지 역량 제고 △글로벌 정합성 개선 등 크게 4가지다.
①중대범죄 대응 역량 강화…의심계좌 정지제도 신설
FIU는 우선 ‘중대 민생침해범죄 의심계좌 정지제도’를 도입해 범죄자금의 즉시 차단체계를 마련한다. 현재는 보이스피싱 등 일부 범죄를 제외하면 법원 결정 없이는 계좌를 동결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마약·도박·테러자금조달 등 중대 민생범죄 관련 자금으로 의심되는 계좌를 FIU가 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동결할 수 있도록 특금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또한 테러·핵확산 관련자에 한정됐던 금융거래 제한대상 범위를 국제범죄조직까지 확대하고, 전략분석팀 상설화와 AI 기반 심사·분석 시스템, 암호화폐 추적도구 ‘체이널리시스’ 도입 등을 통해 분석 역량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②가상자산 AML 제도 강화…트래블룰 확대·스테이블코인 대비
가상자산을 활용한 자금세탁 수법이 늘어나는 만큼, 관련 규제도 강화한다. 우선 가상자산 거래 흐름 파악을 위해 트래블룰(정보제공의무) 적용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현재 100만 원 이상의 거래에만 적용되던 트래블룰을 100만원 미만 거래까지 확대하고, 송신거래소뿐 아니라 수신거래소에도 정보 확보 및 거래 거절 의무를 부과한다. 개인지갑 및 해외거래소 거래는 송·수신인이 동일한 저위험 거래만 허용해 투명성을 높인다.
부실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퇴출 기제도 마련된다. 재무상태 및 내부통제 체계가 미비한 경우 신고 수리를 제한하도록 특금법을 개정하고, 법령 위반 사업자에 대해서는 엄정한 제제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결제 수단으로 활용 가능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AML 체계 역시 정비한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 특금법상 ‘금융회사등’에 준하는 고객확인, 의심거래보고 등 기본 AML 의무를 부과하고, 범죄 활용 시 발행 시점에서 동결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내재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이다.
③전문직·법인 구조까지 AML 의무 확대
국제기준 정합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간 ‘규제 사각지대’로 지적돼온 전문직 영역에도 AML 의무가 부과된다.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특정비금융사업자가 부동산 거래나 자산신탁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할 때, 고객확인과 의심거래보고 의무를 이행하도록 특금법 개정을 추진한다. FATF 40개 회원국 중 한국을 포함한 단 2개국만 미도입 상태로, 제도 개선이 시급한 분야다.
유령·위장법인을 통한 자금세탁 차단을 위해 법인을 최종적으로 소유·지배하는 자연인 정보를 관리하는 ‘실제소유자 데이터베이스(DB)’도 구축된다. 향후 금융회사와 수사기관이 해당 DB를 열람하고 실제 정보와 대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대해 법인 계좌를 통한 자금세탁을 원천 봉쇄할 계획이다.
자율참여 형태였던 ‘AML 제도이행평가’는 법정 의무로 전환된다. 평가 불참이나 허위자료 제출 시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며, 위험도가 낮은 경우 ‘동의명령제도’를 통해 시정조치 동의 조건으로 제재 절차를 종결하는 유연한 규제 방식도 병행한다.
금융권의 자금세탁방지 책임구조도 대폭 손질된다. 가장 큰 변화는 특금법상 ‘보고책임자’를 반드시 임원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임원이 직접 AML 사항을 관리하게 함으로써 경영진의 책무를 강화하고, 제재 부담이 실무자에게만 집중되는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도다. 또한 산재된 업무지침 규정을 통합 규율하고 위반 시 제재 규정을 명확화한다.
FIU는 오는 상반기 내 법령 개정이 필요한 과제의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시행령 등 하위 법령 정비는 신속히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2028년 3월로 예정된 ‘FATF 제5차 상호평가’에 대비해 범부처 정부합동대응단을 구성·운영할 계획이다. FATF 및 아태지역협의체(APG)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해 초국가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FIU 관계자는 “업무 수행계획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자금세탁으로부터 안전한 선진 국가로 도약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