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약·도박 등 민생침해 범죄를 뿌리 뽑고 가상자산을 악용한 지능적 자금세탁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25년 만에 전면 개편한다. 범죄 의심 계좌를 즉시 동결하는 ‘의심계좌 정지제도’를 도입하고, 가상자산과 전문직 등 사각지대를 제도권으로 편입해 지능화되는 자금세탁 수법에 총력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은 5일 ‘AML·CFT 정책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2026년 자금세탁방지 주요 업무 수행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이형주 금융정보분석원장은 “특금법 도입 후 25년이 지나면서 초국가범죄 등 새로운 형태의 자금세탁 현안에 대응할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라며 개편 취지를 밝혔다.
이번 수행계획은 크게 4가지 축으로 추진된다. 먼저 중대 민생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FIU가 수사기관 요청 시 관련 계좌를 즉시 동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기존에는 보이스피싱 등 일부 범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됐으나, 앞으로는 마약과 도박, 테러자금 등 중대범죄로 범위를 대폭 넓힌다.
가상자산 규제도 대폭 강화된다. 결제 수단화 가능성이 높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 금융회사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범죄 활용 시 토큰을 강제로 동결·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스마트컨트랙트에 내재화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100만 원 미만 소액 거래에도 트래블룰을 적용해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추적한다.
그간 사각지대로 꼽혀온 전문직 영역도 제도권에 편입된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이 부동산 거래나 자산 신탁 업무를 수행할 때 고객 확인 및 의심거래 보고를 의무화하는 특금법 개정을 추진한다. 아울러 금융권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자금세탁 보고책임자를 반드시 임원으로 지정하도록 해 경영진의 책무를 강화하기로 했다.
다음은 금융위 측과의 일문일답
책무구조도가 원래 7월1일부터 도입되는데, 이번에 발표된 제도들도 7월1일부터 자동으로 반영되어 임원들이 의무 포함 대상이 되는 건가.
-그렇지 않다. 직무구조도 도입은 내부 스케줄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지, 이번 책무 구조 정비와 일정이 바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계획을 설명하며 ‘도입’ 대신 ‘정비’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또한, 모든 회사에 일괄적으로 임원 의무 지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회사 규모나 조직 특성을 고려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책임을 지우는 방향이다. 실무자만 제재받고 윗선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보완하려는 취지이지, 현실적으로 어려운 회사까지 억지로 묶지는 않겠다. 다만 필요하다면 대표이사까지 책임을 맡도록 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지방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 소형 기관은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해 보고가 부실할 수 있다. 별도의 지도·지원 체계가 있나.
-상호금융기관의 경우 각 중앙회를 통해 교육과 검사를 상시 진행 중이다. 본인들이 ‘의심 거래’라고 판단하면 관련 자료를 제출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규모 면에서 시중은행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이들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인지하고 이행하고 있다. 검사수탁기관을 통한 현장 검사 시 이런 의무들을 최대한 표준화하고 취약 부분을 정비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대기업 오너나 유명 인사가 차명계좌를 활용해 자금을 빼돌리는 경우도 이번 제도적 장치로 포착 가능한가.
-그 부분은 이번 제도와 결이 다르다. 차명계좌 자체는 국세청이 중심이 되어 관리하며, FIU는 국세청과 자료를 상호 제공하며 탈루를 포착하는 구조다. 이번 ‘특정 비금융사업자’ 논의는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업무 특성상 자금세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사업자들을 관리하자는 취지다. 개인이 돈을 빼돌리는 행위는 관세청,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이 FIU와 협조해 적발하는 영역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음에도 발행자나 개인지갑 등에 강한 규제를 예고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개인지갑 활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나 자금이전 수단으로 대중화될 가능성이 커 자금세탁 위험도 높다는 게 FATF의 평가다. 우리의 인식은 ‘스테이블코인이라고 해서 다른 가상자산과 다르게 봐주지는 않겠다’는 쪽에 가깝다. 규제 수위가 더 높다기보다, 발행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동결·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내재화하도록 요구하는 점이 차이다.
해외 거래소와의 거래 제한이나 트래블룰 적용 수위는 국제 기준보다 높은 편인가.
-무조건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도에 따른 조치다. 고위험 국가 소재나 트래블룰 연동이 안 되는 곳은 제한하겠지만, 저위험 국가의 거래소라면 동일인이 아니더라도 거래를 허용할 여지가 있다. 현재 논의 중인 강화 방안들은 대부분 FATF에서 요구하는 국제 기준을 반영한 것이다.
발행업자와 유통업자의 의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또 '동결·소각 기능'의 기술적 구현 방식은.
-기존에는 금융회사나 거래소에만 의무를 부과했지만, 앞으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에게도 동일한 자금세탁방지 의무(KYC, STR 등)를 지게 하겠다는 뜻이다. 기술적으로는 발행 단계에서 의심 거래가 포착될 경우 즉시 해당 토큰을 동결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기능을 스마트컨트랙트 등에 내장하도록 요구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중대 민생범죄 분석을 FIU가 자체적으로도 한다고 했는데, 규모나 기준이 어떻게 되나.
-마약·도박 등 중대범죄와 관련해 수사기관 요청이 오면 STR 확인 후 계좌 분석을 거쳐 내부 심의회(원장 및 외부 심의위원 참여) 절차를 밟는다. 새로 도입되는 제도라 정확한 건수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중대범죄에 한정하는 만큼 일반적인 거래처럼 숫자가 방대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FIU에 접수되는 전체 STR 건수가 워낙 많아 실제 운영을 통해 파악해 봐야 한다.
실제 법집행기관 제공 건수 대비 수사·기소 전환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2025년 기준 정보 제공 건수는 약 6만8000건이며, 이를 통해 국세청(약 2조원)과 관세청(약 2조 2000억원)의 추징 성과가 있었다. 다만 기소율 등 더 구체적인 통계는 수치를 확인해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