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가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시장이 덕을 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영등포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A씨)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었던 지난 8일 찾은 서울 영등포중앙시장은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산한 풍경이었다. 인근 600m 이내에 있는 ‘이마트 영등포점’과 1㎞ 안팎의 ‘롯데마트맥스 영등포점’, ‘홈플러스 메가푸드마켓 영등포점’이 모두 문을 닫았지만 시장을 향하는 발걸음은 눈에 띄게 뜸했다. 일요일인 이날 아예 문을 닫는 점포도 적지 않았고 젊은 소비자를 찾기는 더 어려웠다.
영등포중앙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A씨는 “일요일에 마트가 쉬는 게 시장에는 별 의미가 없다”며 “특히 지금처럼 추운 날씨에는 주말 장사를 접는 사장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명분으로 시행돼 온 대형마트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현장에서는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2010년 제정된 유통법은 현재 대형마트와 준대규모점포(SSM)에 대해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매월 이틀의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제정 초기에는 전통시장 반경 500m를 전통산업보전구역으로 지정해 대형마트 출점을 제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2012년부터는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의무휴업 조항이 본격 도입됐다. 이후 규제는 유지·강화돼 현재는 심야와 새벽 시간대 오프라인 영업뿐 아니라 해당 시간의 온라인 배송까지 제약을 받는 구조로 확대됐다. 일몰 규정도 당초 2020년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2025년으로 한 차례 연장된 데 이어, 지난해 국회 논의를 거쳐 2029년까지 다시 연장됐다.
소비자 체감도 상인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에서 아이를 키우는 30대 B씨는 “미취학 아이에게 장보는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마트를 찾곤 하는데, 그마저도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만 가능하다”며 “그날이 의무휴업일이면 유모차를 끌고 주차도 어렵고 동선도 복잡한 재래시장을 찾기보다는 결국 쿠팡 같은 온라인으로 먹거리를 주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매출은 줄고 온라인만 늘어”…해외는 완화 흐름
이 같은 현장 체감은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연구원 유민희 연구위원이 2024년 발표한 ‘대형마트 영업규제와 위기의 오프라인 유통업’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매출 감소분이 전통시장으로 이전되는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통시장의 구매액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 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 제한이 전통시장 매출 증가로 직결되지 않으며, 양자가 단순한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보완적 유통 채널’일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 행동 변화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대형마트 휴업일에는 다른 오프라인 채널로 이동하기보다는 지출 자체를 줄이거나, 구매 시점을 앞뒤로 조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대형마트 선호도가 높은 소비자일수록 주말에 필요한 물량을 미리 구매하는 경향이 강해, 일요일 휴업이 소비의 전환보다는 ‘집중’을 유도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온라인 유통으로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뚜렷했다. 오프라인 규제가 전통시장 활성화보다는 온라인 소비 확산을 자극하는 구조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 연구에서 유통법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이동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등 일요일 휴식이 문화에 자리잡힌 국가에서도 영업 제한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예외를 허용하거나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1990년대까지 ‘대규모소매점포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 점포에 휴무와 영업시간 제한을 강제했지만, 대기업 유통사의 점포 쪼개기와 편의점·드럭스토어 중심의 우회 확산을 초래하며 소상공인 보호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중앙정부 차원의 규제를 폐지했고, 소상공인 쇠퇴 문제는 대형 유통과 온라인 중심의 구조적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흐름으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규제 결정 권한의 범위에는 국가별 차이가 있었지만,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는 대형마트 영업 규제 관련 지방정부의 재량이 점차 확대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반면 현행 유통법 제12조 제2항은 지자체장이 매월 두 차례의 의무휴업일을 반드시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 사태 이후 달라진 인식…유통산업발전법 완화 논의 급물살 타나
다만 유통법을 둘러싼 규제 기조에는 최근 변화의 조짐도 감지된다. 그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 기조에 무게를 두던 정치권에서도 일부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8일 고위 협의회를 열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 이로써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이 점차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 등을 보호하고 육성·지원하기 위한 유통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야당에서도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은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유통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개정안에는 소상공인이 가맹점 형태로 운영하는 SSM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영업시간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이처럼 그간 유통법 유지를 고수해온 여당까지 뒤늦게 법 손질에 나서는 배경에는 지난해 말 ‘쿠팡 사태’ 이후 달라진 정치권 인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통법이 10년 넘게 오프라인 중심 규제에 머무는 동안 온라인 유통 비중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온라인 플랫폼만 성장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됐다는 지적이 누적되고 있다.
조철휘 한국유통포럼 명예회장은 “그동안은 대형마트가 영업시간과 배송 규제로 묶여 있는 반면, 온라인 채널은 연중무휴 24시간 영업이 가능해 사실상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며 “이 때문에 온라인 채널이 일방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조 명예회장은 이어 “새벽배송 제한이 풀릴 경우 유통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 대형마트가 경쟁하는 ‘3파전’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며 “대형마트 점포 수는 줄고 있지만 전국 매장과 SSM까지 배송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사실상 전국 단위 MFC(Micro Fulfillment Center) 물류망을 구축할 수 있고, 신선식품에 강점을 가진 재고를 기반으로 빠르게 전국 권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넓어지고, 기존 3강 온라인 업체들과 대형마트가 동일한 경쟁 환경에서 맞붙는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