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가장 직관적으로 답해 온 공간이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 그리고 편의점이다. 이른바 ‘올다무’와 편의점은 한국의 일상을 압축한 유통 인프라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K-라이프스타일의 입구였다. 그러나 지금, 그 답마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올리브영은 K-뷰티 쇼핑의 종착지였다. 검증된 베스트셀러, 언어 장벽 없는 진열, 즉시 세금 환급까지 갖춘 ‘완벽한 교과서’였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분산되고 있다. 동대문의 도매형 마스크샵, 성수와 한남의 브랜드 플래그십, 체험형 뷰티 공간으로 흩어진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소비 단계가 성숙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다. 이렇게 소비 단계가 변화한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표준화의 한계다. SNS로 무장한 Z·알파 세대 관광객은 더 이상 ‘가장 많이 팔린 제품’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만 아는 브랜드’, ‘현지인도 다 알지 못하는 인디 브랜드’를 찾는다. 올리브영이 표준이었다면, 성수의 팝업과 골목 매장은 발견의 공간이다.
둘째, 가격과 물량의 문제다. 선물용으로 마스크팩을 수십 장씩 구매하는 관광객에게 감성보다 중요한 것은 단가다. 이들에게 동대문 창고형 매장은 올리브영을 대체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다.
셋째, 구매에서 경험으로의 이동이다. 관광객은 이제 제품이 아니라 퍼스널 컬러 진단, 피부 측정, 메이크업 시연 등 ‘K-뷰티 시스템’을 소비하길 원한다.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강력하게 어필하는 이유다.
여기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시간의 점령’이다. 백화점 셔터가 내려간 심야에 관광객을 받아주는 건 24시간 불 켜진 편의점뿐이다. 치안이 보장된 밤거리에서 즐기는 ‘한강 라면’이나 ‘편의점 꿀조합’은 서울만이 가능한 야간 관광(Night-time Economy)의 킬러 콘텐츠다. 편의점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관광의 유휴 시간을 매출로 전환하는 강력한 플랫폼이다.
이 변화는 관광 지형 자체를 바꾼다. 외국인 관광객은 더 이상 명동, 홍대, 강남이라는 단위 거점에 머물지 않는다. 성수, 한남, 동대문 같은 골목 상권으로 확산된다. 소비 역시 고가 단품 중심에서 중저가 다품종 소비로 이동한다.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지갑은 더 자주 열린다.
문제는 정보다. 채널이 파편화될수록 ‘어디가 진짜인가’에 대한 정보 피로는 커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의 역할이 새롭게 정의된다.
서울의 다음 관광지는 새로 만들 곳이 아니다. 을지로의 밤, 혜화의 골목, 망원의 편의점처럼 이미 외국인이 걷고 있지만 아직 이름이 없는 거리들이다. 행정의 역할은 거창하지 않다. 이 거리에 이름 하나와 QR 하나를 붙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성수를 ‘틱톡 대란템 존’, 동대문을 ‘가성비 대량구매 존’, 한남을 ‘체험형 K-뷰티 존’으로 큐레이션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외국인의 탐색 비용은 급격히 줄어든다. 쇼핑은 곧 관광 콘텐츠가 된다.
연간 방한 외국인 2000만 명 중 다수가 서울에 머물며, 편의점과 K-뷰티 채널에서 쓰는 돈은 연 3조 원을 훌쩍 넘는다. 체류 시간이 30분 늘어나면 1인당 소비는 1만 원 이상 증가한다. 이 변화는 이미 계산대 위에서 숫자로 증명되고 있다.
해법은 분명하다. 먼저 쇼핑을 ‘걷는 경험’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미술관 도슨트처럼, 성수나 한남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인디 브랜드 공간을 연결해 브랜드 철학과 공간 디자인, K-뷰티 시스템을 설명하는 ‘K-뷰티 도슨트 투어’를 구상해볼 수 있다. 쇼핑이 ‘사는 행위’에서 ‘이해하는 경험’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경험을 완성하게 하려면 편의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대량구매 이후 캐리어 앞에서 망설이게 만드는 순간 여행의 만족도는 급락한다. 소규모 매장에서도 즉시 세금 환급이 가능하도록 하고, 구매한 상품을 호텔이나 공항으로 바로 보내는 핸즈프리 쇼핑 서비스를 결합해야 한다. 짐 없는 쇼핑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체류 소비를 늘리는 강력한 장치다.
관광은 더 이상 사진 찍는 장소를 관리하는 산업이 아니다. 어디에서 처음 사고, 어떻게 경험하고, 또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 이제 관광은 K-라이프스타일 유통망을 설계하는 산업이다. 올다무와 편의점이 1막을 열었고, 포스트 올리브영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이 흐름을 전략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유행으로 흘려보낼 것인가. 서울의 다음 관광지는 아직 지도에 없다. 그러나 이미 외국인들은 그 길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