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도 못 했는데…” 동료 잃은 3년, 전세사기는 여전

“답장도 못 했는데…” 동료 잃은 3년, 전세사기는 여전

기사승인 2026-03-02 15:29:17 업데이트 2026-03-02 21:41:16
지난달 25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대책위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유림 기자


“2년 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새벽 6시에 기차를 타고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올라오는 길에 대구에서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한 분이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줬어요. 기자회견에 늦을까 봐 마음이 급해 고맙다는 답장을 하지 못했는데 다음 날 그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감사 인사도 전하지 못한 채 함께하던 동료를 떠나보냈습니다”

전세사기 사태 발생 3년, 최근 만난 정태운 대구 전세사기대책위 위원장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전세사기 피해자를 떠올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3년 전 인천 미추홀구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지금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털어놨다.

정 위원장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다. 그는 2021년 대구에서 전세계약을 맺은 뒤, 2023년 3월 자신이 전세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임대인은 “별일 아니다. 법인을 운영하다 보면 한 번쯤 있는 일이고 곧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정 위원장이 거주하던 건물 20세대 중 17세대가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정 위원장은 “2023년 3월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당시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그해 8월 퇴사했다”며 “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여태까지 모아둔 돈과 가족의 도움으로 버텼고 중간 중간 아르바이트와 쿠팡 물류 일도 했다. 킥 배달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 3개월간 입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가 수도권을 넘어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어떤 현상이든 수도권에서 시작해 외곽으로, 결국 지방으로 내려오는 흐름이 있다. 전세사기도 마찬가지”라며 “대구의 경우 피해자 신청 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 일일상담소를 운영했는데 한 사건에서만 약 350명의 피해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장은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경매 차익이 많다는 이유로 피해자 인정 요건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설정한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피해자 인정 요건을 보다 현실에 맞게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현황.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피해자들


전세사기 피해는 해마다 누적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2023년 6월 이후 누적 피해자는 총 3만644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위원회의 피해자 인정 비율은 62.6%로 집계됐으며 요건 미충족으로 부결된 비율은 21.0%다.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 수는 2023년 11월까지 1만3433건이었으나 이후에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3월 약 2만7000건 수준이던 전세사기 규모는 같은 해 6월 3만400명, 8월 3만2185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해 전세사기특별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2023년 5월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같은 해 6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에 따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세사기 피해자로부터 우선 매수권을 양도받아 경매·공매에 참여해 주택을 낙찰받은 뒤, 이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 피해자에게 제공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매차익으로 피해자를 지원한다.

정부의 피해 주택 매입 규모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LH 전세사기 피해 주택 매입 현황에 따르면, 2025년 5월 669채에서 9월 2529채, 12월 4898채로 증가했으며 지난 1월에는 5889채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전세피해 지원센터에서는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을 대상으로 상담부터 지원 프로그램 연계까지 종합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신규 임차자금 대출, 기존 전세자금의 저리대환 등 복합적인 금융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피해자별 맞춤형 법적 대응 방안에 대한 무료 상담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피해자 상당수가 이러한 공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의 기준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기준에 따라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전입신고)를 마치고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임대차보증금이 5억원 이하인 경우(최대 7억원 이하) 등에 해당해야 한다. 특히 다수의 피해자가 있어야 하며,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의도가 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를 충족할 경우 심사를 통해 피해자로 인정된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전세사기특별법 보완을 촉구하며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완화 △모든 피해자가 보증금 최소 50%를 회수할 수 있는 최소보장 방안 도입 △신탁사기 피해자 및 다세대 공동담보 피해 구제를 위한 배드뱅크 도입 △임대인 동의 없이 가능한 피해주택 시설 관리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선구제 방안 마침내 진전…보완 요구와 근본 대책

피해자들이 꾸준히 요구해온 선(先)구제 방안은 최근 진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 ‘선구제 후(後)정산’ 방식으로 지원하는 법안을 다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대책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매로 회복받는 금액이 보증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국가 재정으로 지원하는 최소보장제를 입법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경매 회복금이 보증금의 일정 비율에 미달하면 국가가 직접 차액을 메우고, 경매 착수 전에도 일부를 먼저 지급하는 선지급·후정산 방식도 도입된다.

공동담보 피해자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됐다. 다른 담보 경매가 완료되기 전에도 피해주택 경매차익 일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경매 상황에 따라 피해 회복 수준에 차이가 발생하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당정은 형평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구제에 보다 무게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는 “선지급·후정산은 국가가 먼저 보전하는 구조인 만큼 결국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입법 논의 재개를 환영하면서도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최소보장 비율은 적어도 피해 보증금의 50% 수준이어야 한다”며 “또 신탁사기나 공동담보 등 권리관계가 복잡한 경우 LH 매입이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한계가 남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사각지대 피해자를 빠짐없이 구제해야 한다”며 “LH 매입이 거절된 피해자도 최소보장·선지급 대상에 포함돼야 하며 지자체별 불법건축물 양성화 심의 기준이 달라 발생하는 매입 거부 사례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 예방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예방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지급·후정산 방식도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근본적으로 전세사기를 막으려면 임차인이 확인해야 할 사항을 보다 면밀히 점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미국 IAU 교수)은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더라도 전세 계약 기간 중 변동사항이 발생할 수 있어 매달 확인하기 어렵다”며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비교적 원활한 반전세를 선택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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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