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글로벌 해상 공급망에 전례 없는 동맥경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가 마비될 위기에 처하자 해운 운임은 폭등했고, 글로벌 선주들의 시선은 새로운 배를 가장 빨리 만들어낼 수 있는 ‘도크(Dock)’로 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중견 조선사들이 대형사 못지않은 전략적 요충지로 급부상하는 모습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이른바 ‘빅3’의 도크는 이미 2028년 이후까지 예약이 완료된 상태다. 선주들에게 ‘적기 인도’가 수익의 핵심인 상황에서 특정 선종에 최적화된 건조 시스템을 갖춘 중견 조선소는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 현상을 해결할 핵심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는 이번 사태는 해상 물류의 ‘톤-마일(Ton-Mile)’을 급격히 증가시키며 중형 유조선 시장에 불을 지폈다. 희망봉 우회 항로 선택으로 운항 거리가 늘어나자, 초대형선보다 입항이 유연하고 항로 변경에 유리한 수에즈막스(Suezmax) 및 아프라막스(Aframax)급 유조선 수요가 폭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케이조선과 같은 국내 중견 조선사들이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다투는 독보적인 주력 선종이다. 아울러 이러한 도크 포화의 ‘낙수효과’는 유조선을 넘어 컨테이너선과 특수선 분야로도 번지며, 해당 분야에 강점을 가진 HJ중공업 등 중견 조선업계 전반의 수주 랠리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특히 군함 수요가 늘어나는 안보 위기 국면에서는 ‘방산 면허’ 여부가 조선소의 실적을 가르는 척도로 작용한다. 현재 국내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방산 업체는 현대, 한화, HJ중공업 등 3곳이다. HJ중공업 관계자는 “전쟁 국면에서 대형과 중형 조선소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희미해진다”며 “군함을 지을 수 있는 방산 조선소라는 정체성 자체가 활성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 수출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HJ중공업은 지난해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에서 선보인 고속상륙정(LSF)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가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수출 가능성을 높였다. 당시 UAE 사절단이 직접 영도조선소를 방문해 건조 현장을 살피는 등 중동발 특수선 수출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중견 조선소가 단순 하청을 넘어 글로벌 안보 파트너로 도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케이조선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기 위해 MSRA(함정정비협약) 인증 취득에 힘쓰고 있다. 방산 면허가 없는 상황에서, 주력 분야인 중형 탱커의 경쟁력을 발판 삼아 미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특수선 및 함정 MRO 시장 공략을 위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MASGA 프로젝트 참여 가시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진해 조선소의 지리적 요충지와 중형선 건조 노하우를 결합해 군수지원함(Oiler) 및 보조함 등 고부가가치 특수선 포트폴리오의 공격적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
다만 급격한 유가 상승이 조선사들의 수익성 방어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은 가동비와 물류비를 밀어올려 조선 원가의 약 20%를 차지하는 후판 가격 인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특수선 분야에는 호재지만 고유가발 원가 상승은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중견 조선사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대외 악재로 인한 원부자재 수급 지연과 생산 차질 리스크에 대해 정부 차원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리스크 속에서 국책은행의 선제적 지원이 중견사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5일 한국수출입은행은 전남 해남 대한조선에서 열린 15만 6000DWT급 준대형 원유운반선 명명식에 참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안종혁 수출입은행 전무이사는 “업황 개선에 힘입어 중형 조선사가 내실 있는 성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국책은행의 금융지원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밝히며 중견 조선업계를 향한 적극적인 금융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중견 조선업계의 향후 과제가 현재의 ‘전쟁 특수’를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배를 만들어 파는 ‘신조’ 중심의 구조를 넘어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 수익 창출이 가능한 ‘사후 시장(Aftermarket)’의 거점으로 도약해 상선 시장의 변동성을 상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호성 국립창원대 첨단방위공학과 교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후 시장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면서 “MRO 거점 확보는 단순 정비를 넘어 부품 공급망 점유와 성능 개량 시장 선점을 의미하며, 이는 재래식 무기 수요 급감에 따른 수익 공백을 메울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