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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정치] 당초 2박3일로 예정됐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차일피일 늘어져 4박5일 일정이 됐다. 기대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잘 성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북측과 현대측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유력한 대북 소식통은 13일 “현대측이 제시한 카드가 마뜩치 않을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서는 현대측이 더 양보를 하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남측이 금강산 관광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고 박왕자 씨 피격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대책, 신변안전보장 문제나 개성공단의 토지임대로 문제에 대해 북측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할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뇌졸중을 앓았던 것처럼 혹서기를 맞아 김 위원장이 건강관리 차원에서 일정을 조정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을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인사를 연이어 만나는 데 부담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의 북·미관계에 대한 밑그림이 뒤틀려 남북관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에도 미국은 최근 조선광선은행(KKBC)을 금융제재 대상 기업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 대북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함흥 방문에 대미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이례적으로 수행한 것도 북·미관계를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고도의 심리전일 가능성도 높다. 약 1년 반 동안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 사실상 남측 당국의 ‘준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현 회장을 통해 남측 당국을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남측과 현 회장의 애를 태우겠다는 것”이라며 “8·15 광복절 경축사에 남북관계 개선 내용을 집어넣으라는 압박 성격도 있다”고 말했다.
현 회장의 방북이 뻔히 예정된 가운데 함경남도 함흥으로 현지지도를 나간 것도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나주는 것이라는 이른바 ‘이미지 정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안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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