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지난 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제15차 세계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가 6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지난 13일 폐막했다.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신경외과학회 학술대회는 1957년 벨기에 브뤼셀을 시작으로 대회마다 전 세계 3000여명의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이번 서울대회는 일본(1973년), 인도(1989년)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세 번째 개최된 행사로, 역대 최대 규모로 성공적인 학술행사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세계 110여개 국가에서 45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학술대회 기간 동안 총 329세션과 3300편의 연제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소아신경외과 왕규창 교수(사진)가 한국 신경외과학 분야 대표로 참여해, 지난 12일 전세계 신경외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선천성 기형-신경외과의 역할(Congenital Anomalies:Role of Neurosurgeons)’ 강연을 펼쳤다. 왕규창 교수를 만나 이번 학술대회의 서울 개최 의미와 발표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적 학술대회서 한국대표로 발표…신경외과 의사로 영광스러운 일
연설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왕규창 교수를 만나 소감을 묻자 “발표에 아쉬운 점도 있지만 끝나고 나니 참 홀가분하다. 말주변도 없고 영어실력도 부족해 부담이 많았다”며 한국 대표로 전세계 전문가들을 상대로 주제를 발표한 것에 대해 영광이라고 웃어 보였다.
Q. 발표 주제가 ‘선천성 기형-신경외과의 역할(Congenital Anomalies:Role of Neurosurgeons)’이었습니다. 이 같은 연제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소아신경외과의는 선천성 기형을 자주 만나는 의사 중 하납니다. 장애를 심한 환자를 볼 때 철학이나 가치관 없이 환자를 보는 것은 환자에게는 물론 의사 자신에게도 재앙이라고 생각해요. 의사는 환자가 가진 질병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선천성 기형을 마주할 때는 달라야 합니다. 환자의 삶까지 시야를 넓혀 진료를 해야 합니다.
Q.환자의 삶을 생각하는 진료란 무엇인지요?
-선천성 기형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굉장히 불행하다고 느끼고 진료를 포기하거나 병원에 잘 오질 않죠. 의사는 그들이 심리적 박탈감을 덜 느끼도록 대화를 많이 하고 병원 내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며 서로가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사회공동체(society)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Q. 신경외과를 선택하고 후회한 적 없으신지?
-신경계 기형이 있으면 수술을 한다고 해도 그 기능을 완벽하게 회복할 수 없어요. 병의 진행을 막아주는 것이 대부분이죠. 예전에는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상당한 자괴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환자들은 의사인 저보다 강해요. 심한 장애가 있다하더라도 우리보다 삶을 더욱 소중히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내갑니다. 세월을 낭비하는 우리들보다 배울 점이 훨씬 많죠.
Q. 강연에서 Abnormal(비정상), Normal(정상)이란 표현이 자주 나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비정상과 정상을 지나치게 수학적으로 정의하자면 95%에 속해야 정상이고 그 이외면 비정상이에요. 아이슈타인과 우사인 볼트를 수학적으로 정의하자면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세계를 발전시키지 않았나요. 세상은 비정상과 정상이 어울려 발전하는 것입니다.
Q. 세계신경외과 학술대회의 서울개최 의미는 무엇인지요?
-서울 유치는 지난 1983년에 8차 대회 유치를 실패한 이후 많은 분들이 노력해 30년 만에 이뤄낸 쾌거입니다. 세계에 한국 신경외과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현재 참가자들의 학술대회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 개최지 국민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저개발국 의사들에게 참가비를 받지 않는 등 의료선진국다운 면모와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한국인의 정서, 행사시스템의 확실성 등이 또 다른 학술대회를 유치하는데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연설할 수 있었던 것은 신경외과의사로 사는 제 인생에서 가장 영예스러운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질병과 수술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유별나게 의사 철학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사실 저도 그럴만한 주제는 못됩니다. 철학 없는 의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이번 기회에 자기 나름의 가치관과 철학을 되돌아보고 재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