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면적은 겨우 2만8051㎢에 인구는 80만명에 불과하지만 국민소득은 유럽의 포르투갈과 비슷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비해서는 4배나 많다.
숫자상으로 남부러울 게 없는 것 같은 적도기니는 그러나 지난해 국경 없는 기자회가 평가한 언론자유지수는 전체 179개국 중 166위에 불과했다. 인권 역시 열악해 야당 국회의원이 아무런 기소절차도 없이 몇 달간 구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구의 4분의 3은 여전히 빈곤층으로 극심한 빈부격차를 겪고 있다.
5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에 낮은 국가 부채율, 비옥한 토지를 보유해 경제 발전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서아프리카의 소국 적도기니가 경제 발전은 고사하고 35년째 독재와 부패에 시달리는 등 자원 부국의 저주에 시달리는 국가의 전형적인 예로 소개됐다.
35년 집권도 짧아?
적도기니의 최고 지도자는 아프리카의 독재자 중 한명으로 유명한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음바소고 대통령이다. 1979년 8월 자신의 삼촌을 몰아내고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35년째 권좌에 앉아있다. 올해 72세인 그는 2009년 대선에서 95.4%라는 경이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오죽하면 미국은 당시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의심이 든다는 논평을 낼 정도였다. 문제는 2016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그가 고령에도 권좌를 내려놓을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2011년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한 그는 이론상 2030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90세까지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도 그가 집권 40주년이 되는 2019년에야 권좌에서 내려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통령의 장기집권 뿐만이 아니다. 큰 아들인 테오도로 오비앙 은게마 망구에는 부통령 겸 안보담당 장관이다. 또 다른 아들인 가브리엘 음바가는 석유장관직을, 처남은 국영석유회사의 수장을 맡고 있는 등 국가의 중요 요직을 사실상 오비앙 가문이 다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방 외교관들은 오비앙 가문이 적도기니의 모든 것을 주무르고 있다고 비아냥거린다.
원유가 운명을 바꾸다
적도기니의 운명이 뒤바뀐 것은 1995년 3월 미국의 엑손모빌사가 자피로 유전에서 대규모 원유를 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스페인과 프랑스, 중국 등도 잇따라 적도기니에 진출했다. 원유 수출로 인해 부를 축적한 적도기니는 공항과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돈을 물 쓰듯이 밀어 넣었다.
문제는 필요 이상의 투자로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장 대통령의 고향으로 수도 말라보 근처의 정글인 오얄라에 전체 인구의 4분의 3이 살고도 남을 만한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엄청난 돈을 들였다. 이곳에는 새로운 대통령궁과 의회, 성당, 500개의 객실을 갖춘 특급호텔까지 지어지고 있다. 왕복 6차선 도로를 건설했지만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을 정도다. 외교관들은 오얄라가 새로운 수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SOC에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교육과 보건 분야에는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5세미만 영아 사망률이 20%에 이르고 평균 수명도 50세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주변국이 5~10%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적도기니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부패로 인한 투자여건도 좋지 않아 2005년부터 원유시설 등이 낡아 원유 생산량도 감소추세에 있다. 지난해에는 하루 27만1000배럴까지 감소했다. IMF는 “SOC 건설을 위한 비용낭비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벌어들인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변수
적도기니의 미래에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큰 아들인 오비앙 부통령이 불법 돈세탁을 통해 구매한 미국 내 자산압류를 추진하고 있다. 독재정권의 부패 자산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미국 법은 불법행위로 얻어진 자산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몰 수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령의 아버지를 대신한 권력 승계 역시 국민들의 반감이 높다. 둘째 아들인 가브리엘 석유장관 역시 두 번째 부인 태생이라는 약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누가 권력을 승계하든지 취약한 기반으로 인해 쿠데타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해외 유학을 다녀온 젊은 관리도 현실을 바꾸길 원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 야당 지도자는 “정치적 자유가 더 후퇴하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이런 후진적 행태가 계속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