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하원은 13일(현지시간)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과 야당의 지지 속에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찬성 88표, 반대 44표, 기권 12표로 가결시켰다. 연정에 참여한 기독민주당은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미성년자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함에 따라 필립 국왕의 재가를 거쳐 조만간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벨기에 집권 사회당은 2012년 12월 미성년자의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는 안락사법 개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1년간의 공청회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안락사법이 상원을 통과했었다.
벨기에에서는 미성년자 안락사 허용에 대해 정치권과 여론의 지지가 높아 통과가 예상됐었다.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미성년자의 안락사 허용에 대해 75%가량이 찬성의사를 밝혔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는 여전히 미성년자 안락사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네덜란드에 이어 2002년 안락사를 허용한 벨기에는 18세 이상에게만 적용해왔다. 네덜란드는 반면 12세 이상에 대해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2012년 1432건의 안락사가 시행된 벨기에에서는 매년 1000건 이상 안락사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2006~2012년 사이 18세 이상 20세 미만인 자가 안락사를 신청한 경우는 단 한 건에 불과할 정도로 젊은 층의 안락사 시행요구는 거의 없었다.
법안 논의 초기부터 안락사 도입을 반대해온 가톨릭교회는 하원 표결을 앞두고 미성년 안락사 허용을 반대하는 금식기도일을 시행하기도 했다. 벨기에의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지도자들도 공동성명을 내고 “이처럼 중대한 문제가 점점 더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며 “미성년자 등 취약계층의 안락사는 원치 않는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벨기에 의료계는 미성년자의 자기결정을 전제로 하고 안락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지난해 11월 의회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이미 법의 테두리 밖에서 시행되고 있는 미성년자 안락사를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2001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한데 이어 2002년 벨기에, 2009년 룩셈부르크가 안락사를 허용했다. 미국에서는 오리건주가 1997년부터 안락사를 허용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도 안락사 허용문제가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