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신장치 끄고 “아무 이상없다” 무전=MH370이 쿠알라룸푸르를 이륙한 것은 8일 새벽 12시41분. 이륙 40분 뒤에 여객기 운항정보 교신장치(ACARS)의 일부가 꺼졌다. 이륙 54분이 지나서는 비행기의 위치와 고도 등을 레이더기지에 전송하는 트랜스폰더(transponder) 역시 작동을 멈췄다. ACARS는 엔진 상황 등의 기체 정보를 지상으로 보내는 교신장치로 기능 일부를 끄려면 조종석의 스위치를 내려야 한다. ACARS의 다른 기능인 ‘전송시스템’은 트랜스폰더가 꺼지고 나서도 4∼5시간 동안 1시간 간격으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여객기의 이상 신호를 관제탑에 보고하지 않았다. 오히려 쿠알라룸푸르 관제탑에 “다 괜찮다. 좋은 밤 지내라(All right, good night)”는 무전을 보냈다. 이것이 여객기에서 보내온 마지막 무전이다.
무전을 보낸 이가 자하리 아흐마드 샤(53) 기장인지 파리크 압둘 하미드(27) 부기장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다. 제3자가 보냈는지 여부도 밝혀지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ACARS의 전송시스템까지 끄려면 조종석 아래에 있는 전자 설비를 따로 만져야 한다. 즉 한명은 조종간을 잡고 다른 한명은 조종석 아래로 내려가 전송시스템을 고의로 조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여객기가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경찰도 조종사를 포함해 여객기의 운항을 지원한 엔지니어 등 지상요원까지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렇다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당국은 샤 기장이 야당인 국민정의당의 시바라시 라시아 의원의 비서이자 친구인 피터 총과 ‘민주주의는 죽었다’는 정치 구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함께 사진을 찍은 점에 주목하고 있으나 친지들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4가지 도구 실종으로 수색 더 힘들어=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기의 수색이 힘든 이유로 주레이더와 보조레이더, 자동송신장치, 조종사의 구두 보고 등 통상적으로 여객기 실종시 활용되는 4가지가 모두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레이더는 공중에 있는 물체에 무선신호를 쏜 뒤 반사되는 신호를 감지하고 기내에 설치된 보조레이더는 항공기의 식별번호와 고도를 지상에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 자동송신장치는 항공기와 정비기지 간의 교신 채널이고 조종사는 무선장비를 통해 관제탑에 구두 보고를 한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 당국은 수색범위를 카자흐스탄 남부 중앙아시아와 인도양 남부해상까지 대폭 확대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인도양 남부를 잇는 남부 항로로 실종 여객기가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수색범위를 좁히기 위해 항로 주변 20여개국에 인공위성 정보와 민간·군 레이더 데이터 등 실종기 추적 단서가 될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뻥 뚫린 방공망=전 세계 방공 시스템은 9·11 테러 이후 테러범이 항공기를 납치해 초고층 빌딩에 충돌시키는 유형의 테러에 대비하고 있으나 쿠알라룸푸르에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있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속수무책인 것으로 지적됐다고 BBC가 분석했다. 말레이시아 공군의 1차 레이더는 사고 당시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비행체를 발견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비행체는 MH370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공군에서 항공분석요원으로 일했던 앤드류 브룩스는 “말레이시아 공군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실종 여객기가 예정된 고도를 비행하다 갑자기 기수를 돌렸을 때 말레이시아 공군과 정부 당국자는 재빨리 이를 알아차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제전략연구소(IISS)는 “말레이시아는 상당한 수준의 장비 현대화 계획을 추진함에 따라 대외 방어능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공군의 경우 여전히 약소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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