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데다 상원 의원 시절 대부분 외교 관련 일을 해온 케리 장관에게 이곳은 친정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실제로 그가 지난해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인준청문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동료의원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이날 분위기는 달랐다. 당초 국무부 예산을 다룰 예정이었던 청문회는 3시간 동안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까지 나서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서 보여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실정을 신랄히 비판했다.
케리 장관을 난처하게 만든 주인공은 존 매케인 의원이었다. 케리 장관이 2004년 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매케인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영입하려 했던 인연이 있었지만 이날 매케인 의원의 호된 질책이 가해졌다. 매케인 의원은 시리아, 중동, 이란 핵문제 등 현안과 관련한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비판하면서 케리 장관이 ‘3관왕(트라이펙터)’을 눈앞에 뒀다고 비꼬았다. 트라이펙터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로 주로 경기 선행·동행·후행 지수 등 세 가지 경제지표가 동시에 부진할 때 쓰인다.
매케인 의원은 “오바마 행정부는 정말로 주요 외교 현안에서 심각하게 실패하고 있다”며 “말은 유연하게 하되 힘은 과시하라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원칙과 반대로 이 정부는 허풍은 크게 떨면서 힘을 거의 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케리 장관의 후임 외교관계 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밥 메넨데즈 의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이란 핵협상에서 너무 많이 양보했다면서 더 많은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케리 장관은 옛 동료 의원의 쓴 소리에 일단 몸을 낮췄다. 그는 “외교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을 달게 받겠다”며 “그러나 적어도 몇몇 현안에서는 최소한의 진전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특히 베트남전 참전용사 동료인 매케인 의원의 지적에 대해 “베트남전 종전협상도 수년이 걸렸다”며 “모든 것을 실패로 돌리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며 오바마 행정부도 뭔가 이루려고 노력 중”이라고 대답했다.
한편 케리 장관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자치공화국과 같은 분리주의 움직임이 번지고 있는데 대해 러시아에 개입하지 말 것을 강력히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크림공화국에서 한 것처럼 군사행동을 위한 구실을 만들고 있다”며 “추가 개입 땐 서방의 혹독한 경제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