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흡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등 30명이 KT&G(옛 담배인삼공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 2건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1999년 첫 소송이 제기된 지 15년 만에 나온 확정 판결이다.
◇“담배 설계·표시 결함 없다”=흡연 피해자들은 담배 제조와 판매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주장해왔다. 중독성을 유발하는 니코틴을 비롯해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담배 설계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담배 소송의 핵심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니코틴이나 타르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채용하지 않은 것을 설계상의 결함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흡연자들은 안정감 등 니코틴의 약리효과를 얻기 위해 담배를 피운다. 니코틴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체 물질도 없다. 대법원은 ‘담배를 만들면서 핵심 요소인 니코틴을 뺄 수 없다’는 KT&G의 주장을 인정했다.
특히 흡연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흡연이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미 언론보도나 법적규제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해롭다는 사실을 알면서 계속 담배를 피우는 것은 흡연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KT&G가 법에서 정한 경고문구 외에 추가적인 설명·경고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KT&G가 담배의 위해성을 은폐했다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KT&G의 담배 제조·판매 행위에 위법성이 없다는 말이다.
◇건보, “인과관계 입증 자신있어”=‘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피해자 측의 주장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흡연과 폐암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더라도, 담배회사의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배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2011년 항소심 재판에서 흡연 피해자 7명 중 4명은 흡연과 폐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배상은 받지 못했다. KT&G의 담배 제조·판매가 위법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대법원도 사실상 항소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나머지 3명도 이번 대법원 판단에서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는 점을 인정받지 못했다.
대규모 담배 소송을 준비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안선영 고문변호사는 “건보공단이 준비하는 소송 관련자들은 대법원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4명과 같은 종류의 폐암·후두암을 앓고 있는 환자”라며 “이번 판결이 향후 소송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담배회사의 위법행위를 개인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며 “건보공단이 소송을 통해 법정에서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건보 소송은 이르면 오는 14일 법원에 접수될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현수 이영미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