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한 의사는 병원을 개원하며 자신의 전문과목을 표시할 수 있다.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등이 그것이다. 국민들은 의사가 간판에 내건 전문과목을 보고 증상에 부합하는 곳을 찾아간다. 국민들이 굳이 대형병원을 가지 않고도 1차 의료기관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른바 ‘전문의 제도’다. 치과계도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하면 교정과, 치주과, 보철과, 구강악안면외과 등 진료과목을 내걸 수 있지만 무슨 이유때문인지 그동안 진료과목을 표기한 치과를 찾을 수 없다. 억울한 속사정을 대한치과교정학회 정민호 기획이사(사진)를 만나 들어보았다.
정민호 이사는 “가령 치과 교정시 교정전문의에게 시술받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치과간판만 보고는 해당 의사가 교정에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갖춘 의사인지 가늠할 방법이 없다. 치과계 외 다른 병원은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방사선학과, 전문과목을 표기하면서 의원급 치과기관만 전문과목을 표시한 곳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대한치과협회가 1962년 정부가 시행하려고 했던 전문과목 표방허가시험을 무산시키고 그 이후로도 전문과목 표시가 어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치협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정부가 추진하려했던 전문과목표방을 억제해온것은 레지던트 비수련자가 다수인 대한치과협회의 인적구조 때문에 전문의자격을 취득할 수 없을 때 자신들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한 행동인 것”이라며 “이는 국민의 치아건강을 도모하고 증진할 의무가 있는 의료단체의 역할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21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 100여명의 치과의사들이 모였다. 이들은 모두 2008년 이전에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지만 법에도 명시된 시험응시자격을 얻지 못한 경우다.
정 이사도 이들 중 하나였다. 정 이사는 관련 단체의 로비로 정책이 좌우되는 현 상황을 비난하며 “치협 눈치 보기에 바쁜 정부도 문제다. 과거 레지던트를 수료한 수련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승소했고 치과전문의시험을 실시하고 경과규정을 시행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2003년 치과의사협회의 로비로 2008년 이전에 레지던트를 수료한 사람은 배제됐고 2008년부터 배출되기 시작한 치과의사 전문의에 한해서만 전문과목을 표시할 수 있게끔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문제가 있다. 치과의원에서 전문과목을 표시한 경우 해당 전문과목의 환자만 진료가 가능하다 보니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도 전문과목을 표시하면 오히려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가령 전문과목을 교정과라고 표기하면 교정이외에 치과질환을 진료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때문에 치과의원 중 전문과목 표시 치과는 0.1% 뿐이다. 유명무실한 제도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또 “치과치료는 간단해 보여도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병원 치과병동만 가 봐도 교정과, 구강악안면외과, 보철과, 치주과 등으로 나눠져있다. 왜 나눠져 있겠나. 치과에서 행하는 모든 시술은 치과의사의 숙련도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과의사도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전문분야를 만들어간다. 시간과 돈을 들여 자신의 전문분야를 쌓았는데 이익단체의 이기심으로 유명무실한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민호 이사는 “전문과목표시를 저해하는 현재의 법안은 동네 치과를 이용하고자 하는 국민들에게 명백하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복지부는 2008년 이전에 레지던트 수련자에 대해 전문의자격시험을 통해 전문의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현재의 치과전문의제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