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마지막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의료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만났다. 한눈에 보아도 지난날의 고통이 느껴질 만큼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필자에게 꺼낸 첫마디는 뜻밖에도 가수 신해철 씨의 죽음이었다. 신 씨와 똑같은 의료사고 피해자였지만 이후의 상황은 확연히 달랐다.
장례절차 후 3일 만에 부검이 이뤄진 신씨의 경우와 달리 마취사고로 9살 난 딸아이를 잃은 서동균 씨는 부검까지 4개월이 걸렸다고 호소했다. 일분일초가 초조하고 다급했을 유가족들에게 4개월은 너무도 긴 시간이다.
“내 딸은 부검까지 4개월이 걸렸어요. 부검이 나오지 않는 한 진실은 밝혀질 수가 없어요. 왜 유명인의 안타까운 죽음에만 나라가 앞장서서 밝혀주나요. 내 딸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 아닌가요.”
국과수의 부검결과가 사건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지만,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하던 병원으로부터 비로소 ‘미안하다’라는 사과한마디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의료분쟁이 일어난 대개의 사건들을 또 다른 의료진에게 물어보면 어떤 과정에서 무엇이 미흡했는지 보인다고 말한다. 누구나 비슷한 실수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료사고의 원인이 오롯이
의사 개인의 실수에 있는지 허술한 병원 시스템에서 비롯됐는지는 더 따지고 봐야할 일이다.
골절 수술 후 숨진 서지유 양의 가족들은 국과수로부터 “마취과정의 문제로 인해 아이의 자발호흡이 회복되지 않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받았다.
국과수는 또 “병원이 연령에 비해 내경이 작은 기관튜브를 사용해 환자에게서 환기부전(가스 교환의 이상) 발생했을 것으로 보이고 이것이 자발호흡을 회복하지 못한 요인으로 보인다”고 결론내렸다.
유족들은 “검찰이 부검결과를 토대로 의사협회 측에 해당병원 진료기록감정을 요청했다. 의협의 감정결과가 향후 형사재판에 어떻게 미칠지 모르지만 부검결과가 없으면 경찰도 검찰도 나서주지 않는다”며 “의료사고 피해 가족 상당수가 병원의 과실을 입증할 수 없어 적정선에서 병원과 합의를 본다”고 말했다.
한편 부검을 하지 못하고 화장을 치룬 유족들은 막막한 상태다. 응급실서 치료도중 숨진 고 전예강 양의 경우가 그렇다. 고 전예강 어머니 최윤주 씨는 “부검을 하지 않아 당시 CCTV내용과 진료기록부만으로 병원의 과실을 입증해야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처음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해당 병원의 거부로 취소돼 민사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법정 다툼이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의 처치를 다했다는 병원의 말을 믿고 싶었다’는 유가족들. 하지만 사고 발생 후 진정어린 위로보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수습하기 급급해하던 병원의 모습은 최선을 다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좀처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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