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과 유전자변이 그리고 표적항암제 치료=같은 폐암환자라도 종류가 다르다.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가 발견된 경우, 해당 유전자의 종류에 따라 폐암의 종류가 나뉘고 사용하는 약제도 달라진다. EGFR 유전자가 폐암에서 발견되면서 이 유전자를 차단하는 다양한 표적항암제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ALK 유전자 변이를 지닌 폐암환자다. EGFR 유전자에 비해 비세포 폐암환자에게서 발견되는 비율이 2∼7%에 지나지 않아 해당 유전자를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의 개발이 더딘 편이다. 그러나 ALK 양성 폐암환자는 음성 환자에 비해 암세포 증식이 빠르고 전이가 잘돼 악성암으로 꼽힌다. 재발 위험이 2배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뇌나 간 전이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어, ALK를 타깃으로 하는 다양한 표적항암제의 개발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2세대 ALK 양성 표적항암제 등장 ‘뇌 전이 막는 유일 대안’=ALK 유전자변이가 발견된 경우 지금까지 크리조티닙(Crizotinib) 성분의 표적항암제로 치료를 받아 왔다. 그러나 표적치료로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기존 표적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경우다.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2세대 ALK 억제제 표적항암제가 개발됐다. 노바티스에서 나온 세리티닙(Ceritinib) 성분의 자이카디아(Zykadia)는 조기 허가승인을 받을 정도로 임상연구에서 크리조니팁에 내성을 갖는 환자에서 높은 반응률을 보였다. 과거 ALK 표적항암제 치료경험이 있는 폐암환자 163명과 치료경험이 없는 83명을 대상으로 자이카디아를 투여한 결과, 약제에 반응하는 환자군이 61.8%를 차지했다. 여기서 자이카디아로 첫 치료를 시작한 83명의 환자군의 질병무진행 생존기간이 18개월을 웃도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특히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고 일컬어지는 뇌전이 폐암환자에게서도 치료 가능성이 입증됐다. 암이 뇌로 전이된 124명의 환자에게 자이카디아를 투여한 결과, 55.6%가 약제에 반응했고 29명이 참여한 임상연구에서 3분의 1이 자이카디아 투여 후 뇌로 전이된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
자이카디아 임상연구를 진행한 마가렛 듀건 박사(노바티스 글로벌 프로그램 헤드 수석부사장)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기자와의 만남에서 “암 유전자를 연구하는 정밀 종양학의 최신 성공 사례로 자이카디아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폐암환자는 기존의 ALK 억제제를 투여했을 때 1년도 안 돼 병이 진행됐다. 자이카디아를 이용한 임상시험에서 병의 무진행기간이 1년을 넘겼다는 점과 치료제에 대한 반응률이 약 56%에 달했다는 점, 뇌로 전이된 종양의 크기가 줄어든 사실은 이전과 다른 획기적인 결과”라며 “앞으로 진행되는 임상연구에서 높은 치료효과가 지속적으로 도출될 경우 1차 치료제로 승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자이카디아, 가치 인정받아 이례적 빠른 승인=자이카디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희귀질환 치료제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혁신적 치료제(breakthrough therapy)’로 분류됐다. 혁신적 치료제로 지정받은 의약품은 빠른 허가승인이 가능하다. 현재 자이카디아는 국내와 상가포르에서 과거에 크리조티닙 항암제로 치료받은 적이 있거나 뇌로 전이를 보이는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허가승인을 받았다. 지금까지 미국, 유럽연합, 멕시코, 칠레, 한국, 과테말라, 에콰도르 등에서 허가를 받았다. 유럽 여성 폐암환자 연대기구(WALCE) 스테파니아 발론 국제관계 담당관은 “ALK 양성 비소세포 폐암을 겨냥한 치료 대안이 매우 제한적인 형편임을 상기할 때 자이카디아의 허가승인은 폐암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자이카디아의 본격적인 국내 출시가 예상돼 폐암환자의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싱가포르=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