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인세현 기자(부산)] 사람은 사람을 왜 의심하게 되는 걸까. 역으로 사람은 사람을 왜 믿게 되는 것일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영화화한 '분노'(감독 이상일)는 얼핏 살인범을 찾는 미스터리 장르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믿음과 의심에 관한 이야기다.
잔혹한 살인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되는 세 명의 남자와 그 주변 사람을 그린다. 어촌마을에서 아이코와 사귀는 타시로, 광고 회사 사원인 유마와 사귀게 되는 나오토, 오키나와 외딴 섬에서 홀로 지내는 다나카 세 사람은 과거가 불분명한 인물이다. 세 사람에 대한 주변인의 희미한 불신은 믿음으로 바뀌고 믿음은 다시 '믿고 싶음'으로 변한다. 의심의 기로에 놓인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각기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극 중 텔레비전 공개 수배 프로그램에서 살인사건 범인의 얼굴과 정보가 나올 때마다 관객의 긴장감도 덩달아 고조된다. 의심스러운 세 명의 인물 중 분명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있기 때문. 관객도 세 인물의 주변인처럼 과연 누가 살인범인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진범을 가려내는 것이 아니다.
이상일 감독은 7일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살인범을 쫓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것보다 '사람은 왜 의심하고, 반대로 왜 믿게 되는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영화에 관해 설명했다. 이 감독은 "사람을 의심하게 되면서 잃어버리는 것이 있고, 반대로 너무나 쉽게 믿어서 갖게 되는 위태로움이 있다"며 "믿든 의심하든 인간관계에서 행복과 불행이 수반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전제하면서도 누군가 믿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며,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강조했다.
총 142분의 긴 상영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세 부분으로 나뉜 서사가 섬세하고 밀도 높게 연출된 덕분이다. 타시로, 나오토, 다나카 세 사람의 주변인이 그들을 믿고 의심하게 되는 과정과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 과정에서 힘을 잃지 않는다는 것. '분노'는 불분명한 의심과 감정에 기댄 믿음을 잔잔하고 촘촘하게 쌓아 결국 조용한 일격을 가한다. 와나타베 켄, 모리야마 미라이, 미츠야마 켄이치, 아야노 고, 히로세 스즈, 미야자키 아오이, 츠마부키 사토시 등 배우들의 호연도 돋보인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
inou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