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고속도로 정체로 유발되는 ‘목 중풍’을 아시나요?…디스크와는 다른 경추척수증

신경고속도로 정체로 유발되는 ‘목 중풍’을 아시나요?…디스크와는 다른 경추척수증

인종적 특성, 생활 습관으로 위험도 높아
"수술 걱정 딛고 조기진단과 치료에 힘써야"

기사승인 2025-11-10 06:00:09 업데이트 2025-11-10 13:27:11
김태훈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가 경추척수증과 관련해 설명했다. 쿠키뉴스 유희태 기자

50대 남성 A씨는 어느 순간부터 물건을 잡으려고 하면 힘이 빠져 자꾸 떨어뜨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근력 저하라고 생각했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팔 통증이 잦아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다리·발목 감각까지 이상해졌다. 이후 소변 장애까지 나타나자 병원을 찾았다. 목 디스크를 의심했지만, 진단명은 생소한 ‘경추 척수증’이었다.

경추 척수증은 목 뒤를 지나는 척수관이 좁아지면서 신경 전달에 장애가 생기는 질환이다. 뇌에서 내려온 신호가 척수를 따라 온몸으로 전달되는데, 척수관이 좁아지면 이 통로가 막혀 신경 기능이 저하된다.

김태훈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쉽게 말하면 신경 고속도로가 좁아져 정체가 생기는 것”이라며 “뇌에서 내려온 지시가 팔다리로 제때 전달되지 않아 감각 저하나 행동 장애가 나타나는 중풍과 비슷한 증상이지만, 원인은 뇌가 아니라 목이기 때문에 ‘목 중풍’이라고도 부른다”고 설명했다.

경추 척수증의 원인은 크게 퇴행성과 유전성으로 나뉜다. 퇴행성 경추 척수증은 노화와 자세 불량 등으로 척수관이 좁아지며 발생한다. 고령 인구가 늘어날수록 위험도 증가한다. 유전적 원인으로는 ‘후종인대 골화증’이 대표적이다. 목 뒤에서 척수를 받치는 후종인대가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며 척수를 압박하는 질환으로, 한·중·일에서 특히 환자가 많고 가족력이 강하다.
 
김 교수는 “한국은 경추 척수증 발생 위험이 높은 환경”이라며 “인종적 특성과 고령화를 동시에 겪고 있어 더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추 척수증이 의심되더라도 병원 방문을 미루는 환자가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경추 척수증, 꼭 수술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반복적으로 올라온다. 척수관을 다루는 수술이라는 점 때문에, 자칫 후유증 위험이 남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치료 결정을 늦추는 것이다.
 
그러나 경추 척수증은 모든 경우에 수술이 필요한 질환은 아니다. 증상과 진행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다만 진료를 미루어 병이 진행되면, 수술을 해도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다.
 
김 교수는 “경추 척수증이라고 해서 곧바로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척수가 눌리는 진행성 변화가 확인될 때는 수술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약물·물리치료 등 비수술적 치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수술이 필요한 시점을 놓친 뒤 병원을 찾으면 되돌리기 어렵다”며 “목 수술이 두렵다는 이유로 진료 자체를 미뤄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김태훈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경추척수증의 증상을 설명하며 생활습관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희태 기자

환자들이 늦지 않게 병원을 찾으려면 일상에서 나타나는 초기 증상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경추 척수증의 대표적인 신호로는 △손끝 감각이 둔해 물건을 자주 떨어뜨린다 △젓가락질이나 단추 잠그기가 갑자기 어려워졌다 △걸음이 흔들리고 계단을 내려갈 때 불안하다 △양손 또는 양발이 동시에 저리다 △소변 줄기 변화나 배변 감각이 달라졌다 등이 있다.
 
김 교수는 “경추 척수증 증상이 퇴행성 질환과 비슷해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며 “몸이 보내는 신호를 잘 파악하고, 제때 검사와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증상이 2주 이상 이어진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며 “정밀 검사를 통해 병을 키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추 척수증 증상이 있어도 병원 방문을 미루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진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이 사지 기능 저하로 넘어져 골절을 겪고, 오히려 더 큰 수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경추 척수증 진단을 받으면 목 수술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진료를 피하는 환자가 많다”며 “결국 걷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 뒤 응급실을 통해 병원에 오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보행이 불안정한 환자가 넘어져 고관절이나 척추 골절로 병원을 찾는 사례도 있다”며 “그때는 경추 척수증보다 훨씬 큰 수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조기에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추 척수증은 보통 60대 이상에서 발병하지만, 최근에는 스마트폰·컴퓨터·태블릿PC 사용 시간이 늘면서 환자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 유전성이 아닌 퇴행성으로 발생하는 경추 척수증을 예방하려면 일상생활에서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김태훈 교수는 △수면 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것 △스마트폰·태블릿PC 사용 시 화면을 눈높이에 맞출 것 △주기적으로 스트레칭을 할 것 등을 조언했다. 
 
김 교수는 “허리 쪽 퇴행성 질환은 운동으로, 목 쪽은 자세 교정으로 예방할 수 있다”며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는 수면시 자세 교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잠자기 전 베개 위치를 뒷목 아래에 두어 C자 커브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며 “베개 아래에 둥글게 만 수건을 넣어 남성은 8㎝, 여성은 6㎝ 정도 높이를 맞추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다만 “엎드려 눕거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자세는 목 건강에 좋지 않다”며 “편안한 베개를 사용하되 목의 C자 커브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직장이나 대중교통에서 화면을 볼 때도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화면은 가능하면 눈높이에 맞추고, 불가피할 경우에도 목을 과하게 숙이지 않은 상태에서 45도 아래로 바라보는 것이 경추 척수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퇴행성 질환이 더 빨리 발병한다”며 “목은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화면을 살짝 올려다보는 방식으로 교정하면 경추 척수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일상 속 주기적인 스트레칭도 경추 척수증 예방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양손을 깍지 낀 뒤 턱을 엄지손가락으로 받치고 목을 뒤로 미는 등의 스트레칭을 틈틈이 해주며 목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김 교수는 “일상에서 50분 동안 화면을 바라보거나 목을 사용하는 활동을 했다면 10분은 쉬어주며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며 “일이 바빠 어렵다면 식사 이후나 퇴근 이후에 목의 긴장을 풀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바른 자세와 빠른 병원 방문이 경추 척수증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전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