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숱한 한국 영화들이 범죄오락 영화에서 범죄의 동기를 다루는 방식은 대부분 복수나 악 그 자체다. 그 가운데서도 주인공들은 대부분 윤리적으로 결백하거나 혹은 순진하기를 요구당한다.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은 악질적으로 느껴지는 대출사기를 우화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주인공인 민재(임시완)는 원래부터 착하기는커녕 사기 꿈나무에 가까웠고, 윤리의식이 바닥에 가까웠지만 숱한 일들을 겪으며 내면을 성장시킨다. 일종의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셈이다.
‘원라인’의 시나리오를 5년 동안 구상한 양경모 감독은 그간 숱하게 변주돼온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시나리오 바깥으로 떨쳐놓고 시작했다. “저는 어떤 이야기를 다루건 간에 마지막 희망은 결국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수나 악이라는 키워드는 그간 너무 많이 다뤄졌고, 그 감정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영화적으로도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죠. 그래서 일부러 그 키워들은 빼놓고 시작했어요.”
악역 박차장 역을 맡은 박병은 또한 단순한 악이기보다는 욕망으로 시작한 인물이다. “얜 정말 나쁜 놈이야, 라고 박아놓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욕망을 쫓아가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박병은 씨는 감정의 내밀한 변화를 적은 러닝타임 안에서도 잘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스테레오 타입을 맡겨놔도 잘 해낼 사람이지만,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악역을 맡긴다면 사람들이 크게 알아봐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인 민재의 성장도 비슷한 계기로 설계하게 됐다. 양 감독의 말을 빌자면, 모든 영화에서 주인공은 성장해야 재미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플롯은 정통성 있는 방식으로 가되 보편적으로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가 자라는 모습을 원했다. ‘원라인’의 배경인 2005년에 양경모 감독은 청년이었고, 2017년인 지금은 기성세대다. 기성세대인 자신이 2017년의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이야기가 ‘원라인’인 것이다.
“우연히 작업 대출 이야기를 어떤 사람에게 들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처음에는 돈을 크게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관심이 갔죠. 그런데 막상 파 보니 이게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른 일인데, 너무 재미있는 일인 거죠. 뭐가 재미있냐면 작업대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범죄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사기를 칠 수가 없죠. 그들이 저에게 가장 처음 한 말이 뭐냐면, ‘감독님이 한 달에 150만원 번다고 치고, 여기에 한 달에 150만원 벌면서 4대보험이 되는 직장인이 있어요. 둘 다 한 달에 150만원은 벌지만 감독님은 은행권 대출이 안 되고, 후자는 돼요. 불공평하죠?’ 였어요. 사람이 홀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거예요.”
단순히 사기꾼들의 사기 수법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경모 감독이 이 이야기를 다루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이야기가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행과 돈과 대출.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대출을 받게 되는데, 과연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모르고 넘어가도 되는 이야기일까? 싶더라고요. 관객들에게, 나아가 사람들에게 들려줄 필요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공익성이라기보다는 가치에 대한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단편으로 만든 영화들 역시 제가 가치 있다고 믿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한 가치가 관객들에게도 재미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