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은지 기자] 배우 김명민은 한 인물 속에서도 다채로운 면을 끌어내는 연기가 강점인 배우다. 그래서 김명민이 그간 보여줬던 연기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가 썩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김명민이 맡은 경감 채이도는 영화 내내 욕 없이는 말을 하지 않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화를 내고 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캐릭터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김명민이 그간 보여줬던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브이아이피’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명민은 “모든 배우의 연기 스타일이 비슷하긴 하다”며 웃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박훈정 감독이 준 디렉션 자체가 ‘드라이’(Dry)였어요. 미국 드라마인 ‘트루 디텍티브’의 매튜 맥커너히를 참고하면 좋겠다고 했죠. 혹시 그 드라마 보셨어요? 보다가 졸 만큼 주연배우가 건조해요. 표정 변화도 없고. 익숙한 연기가 아니라서 당혹스러웠고, ‘이걸 어떻게 러닝타임 두 시간 내내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독이 하라니까 해야지, 어떻게 해요. 한참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박훈정 감독님께 전화가 오더라고요. 톤을 올려달래. 하하.”
당초 ‘브이아이피’ 시나리오 속의 채이도는 우리가 그간 영화 등지에서 봐왔던 전형적인 폭력 경찰 캐릭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명민은 “‘강철중’의 설경구 배우를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건조하게 연기하라던 박훈정 감독의 지시와 시나리오 속 채이도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달랐다. 김명민은 결국 박훈정 감독에게 “나는 (설)경구 형보다 잘 할 자신이 없다”며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박훈정 감독은 채이도의 전사(前史)를 찾지 말라고 했으나, 김명민은 나름대로 채이도의 역사를 머릿속에 만들어내고 연기했다.
“비현실적 캐릭터라지만, 채이도는 ‘브이아이피’에 나오는 인물들 중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그 현실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와 따로 노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 대본대로 연기하면, 전형적으로 보이는 건 피할 수 없죠. 저도 전형적인 건 싫지만 그렇다고 연기를 안 할 수는 없잖아요. 대본 속 채이도는 혼자 방방 뛰고 있더라고요. 결국 시나리오보다 조금 채이도를 눌러가며 중간을 찾았어요. ‘브이아이피’속 채이도는 나름의 고민을 거친 결과물이에요.”
그렇다면 막상 박훈정 감독과 호흡을 맞춰 본 느낌은 어떨까. 김명민은 “항상 박훈정 감독과의 작업을 고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어요. ‘브이아이피’ 때는 제 시간이 잘 맞아서 하게 됐죠. 솔직히 말하면 시나리오 자체는 배우로서의 개인적인 욕심을 챙기려면 선택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박훈정 감독에 대한 믿음만으로 하게 된 작품입니다.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몸이 편한 거 아닐까요. 하하. 모든 배우들이 22회차에서 24회차 사이에 본인 출연 장면이 다 끝납니다. 무지하게 편하던데요. 테이크도 많이 가 봐야 3~4번이죠. 배우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해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에라, 모르겠다’하고 정말 편안하게 촬영 현장에 가서 시키는 대로 임했어요.”
김명민이 말하는 ‘브이아이피’의 장점은 낯설음이다. 장동건과 김명민, 이종석과 박휘순이라는 낯선 조합에 대해 어떤 관객들은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김명민은 “낯선 조합이 되레 또 장점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내내 네 남자 모두가 낯설고 날카롭게 굴거든요. 역할이 그렇다 보니 몰입이 더 쉬워지지 않을까요.”
‘브이아이피’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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