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남한산성' 박해일 "'살인의 추억' 생각나… 치열한 현장이었다"

[쿠키인터뷰] '남한산성' 박해일 "'살인의 추억' 생각나… 치열한 현장이었다"

기사승인 2017-09-29 11:09:21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의 인조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그가 47일 동안 남한산성에서 고립되어 겪었던 논쟁이 인조를 그렇게 평가되게 만들었다. 끝까지 굽히지 않겠다는 주전파와, 청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자는 주화파 사이에서 인조는 계속해서 고민한다. 최근 ‘남한산성’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박해일은 인조의 망설임에 관해 “어떤 위대한 왕이라도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미 아는 것처럼, ‘남한산성’은 코너에 몰린 상태로 시작하는 영화예요. 영화 속 인조를 우유부단하다고 평가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난세에 국운이 걸린 위태로운 결정을 홀로 내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서 인조는 앞에 앉은 신하들에게 민심과 중론을 계속 묻잖아요. 그 상황에서 어떤 위대한 왕이라고 한들 섣불리 홀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겠어요? 순간의 선택으로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역사적으로 박제된 인물을 한 인간으로 표현해내는 작업은 박해일에게도 쉽지 않았다. 역사책으로 봤던 정보들을 취합해 감정을 가진 한 인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 박해일에게는 난감하게 다가왔고, 처음에는 캐스팅을 고사했다. 그러나 결국 캐스팅을 확정지었을 때, 박해일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어도 그 시간을 최대한 잘 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남한산성을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좀 무식한 방법으로 보이기는 하죠? 하하. 인조의 발자취를 좀 따라가 보려고 파주에 있는 능에도 가 봤고,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걸어보기도 했어요. 예전에 남한산성에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전에 갔을 때는 풍광만 즐기며 가볍게 산책했다면, 영화를 준비하면서는 그 공간에 47일 동안 고립됐다는 생각으로 걸어봤어요. 그러니 그 공간이 사뭇 다른 느낌으로 제게 다가오더라고요. 산의 지형도 직접 느껴보게 되고, 각 문에 대한 성격도 고민하게 되고요. 남한산성에 동서남북의 문 말고 쪽문 두 개가 더 있다는 거 아세요? 하하.”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대형 배우들과의 작업도 기대 요소였다. ‘남한산성’의 주연인 이병헌·김윤석·박휘순·고수·송영창까지.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한 작품에 모두 모였다. 박해일은 앞서 ‘살인의 추억’을 통해 송강호와 작업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좋은 배우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는 잘 오지 않아요. 그만큼 기쁘고, 긴장도 됐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했는데,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모든 배우들이 서로 궁금한 표정으로, 어떻게 연기할까? 하는 눈빛으로 모여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좀 지옥 같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피할 곳이 없어서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치열한 현장이 됐죠.”

“덕분에 저도 더 잘 하고 싶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겼어요. 극중에서 인조로서 제가 앉아서 내려다보는 방향에는 모든 배우들이 있어요. 자연스럽게 배우들이 대사를 통해 신념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죠. 보는 재미가 있는 반면에 긴장감도 커지더라고요. 왜냐하면 앞에서 보내는 힘을 제가 또 받아서 번민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보여줘야 했거든요. 좋은 긴장감이 드는 영화였어요.”

‘남한산성’은 다음달 3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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