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이 영화 ‘침묵’(감독 정지우)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정지우 감독이다. ‘해피엔드’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최민식의 정지우 감독에 관한 신뢰는 견고했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정지우 감독이 여태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대뜸 이상한 시나리오를 들고 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며 ‘침묵’의 시나리오를 보기도 전에 영화를 선택한 배경을 전했다.
“꼭 ‘침묵’이 아니어도 정지우 감독이 가져온 작품이라면 아무거라도 했을 거예요. 뭐랄까, 오랜만에 예전의 전우를 만나서 회포를 푸는 기분으로 ‘시나리오 가져와라’라고 말했죠. 그런데 가지고 온 게 ‘침묵’이었죠. 처음에는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말이 되나?’ 싶은 거예요. 허구의 세계라고 한들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딜레마였어요. 그렇지만 결국 결말에 끌렸어요. ‘개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
영화 속 임태산은 윤리적으로 봤을 때 대중들이 호감을 느끼기 어려운 인물이다. 어떤 일이든 간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그는 여태껏 해왔던 것과 다른 선택을 한다. 임태산이 가지고 있는 윤리적 한계점과 일관된 캐릭터를 모두 부수는 선택. 최민식은 그 선택을 회복이라고 불렀다.
“인생을 선하게만 살아온 사람은 회복을 할 수 없어요. 회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많이 엇나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죠. 관객 설득 여부도 임태산의 회복에 달렸다 싶었죠. 다행히 내 생각과 정지우 감독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중간중간 고치며 계속 의견을 교환했어요. 주어진 여건 안에서 나름대로 의도했던 바들은 많이 나온 것 같아요. 물론 100%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작품이건 전부 만족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침묵’은 법정 스릴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은 드라마에 가깝다. 검사가 증인과 피고를 심문하고, 변호사는 피고의 무죄를 항변하지만 중요한 진실은 법정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 사이 얽힌 감정적 씨실과 날실들이 섬세하게 엮여 천천히 윤곽을 드러내는 진실은 비현실적이지만 관객을 충분히 납득시킨다.
“오랜만에 비현실적이지만 굉장히 영화적인 작품이 하고 싶었어요. 추리극이라는 장르적 재미도 충분히 주지만 드라마적 울림이 있는 작품이요. 임태산이라는 인물이 영화 내내 분주하게 뛰는 이유가 단지 자식 사랑일까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마지막에 태산은 미라에게 ‘잘 살라’고 말해요. 그렇지만 미라가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요? ‘잘 살라’는 말의 의미는 두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살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전작인 ‘특별시민’과도 다소 역할이 겹친다는 평이 있지만 최민식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인물이 다르고, 작품이 그려내는 세상이 다른 것이 중요하다는 것.
“장르만 바꿔가며 영화를 찍는다고 해서 고른 선택은 아니에요. 감독이 어떤 세상을 그리고 싶은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죠. 더 다양한 세상, 내가 모르는 세상,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내 사고와 감성이 미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면 저는 좋아요. 멜로든 잔혹극이든 스릴러든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변주를 원하는 건 배우의 본능이에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