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을 앞둔 JTBC ‘더 패키지’의 산마루(정용화)는 보통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과 조금 다르다. 언뜻 보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엉뚱하고,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생각을 감추지 않고 곧장 이야기하는 매력도 있다. ‘산마루’라는 이름처럼 어딘가 존재할 것 같지만, 막상 찾아보면 흔치 않은 캐릭터다.
지난 15일 서울 명동길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겸 배우 정용화는 산마루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을 잔뜩 드러냈다. 연기하면서 산마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산마루는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은 엉뚱한 캐릭터예요.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자기만의 확신을 갖고 있는 친구죠. 물론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면도 있어요. 융통성도 없고 해야 하는 건 꼭 해야 하는 이런 사람과 만약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면 미움을 받기 쉬울 것 같아요. 오해하기도 쉽고요. 하지만 전 거꾸로 우리 사회에 산마루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잖아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면 참는 경우가 많죠. 누구의 말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건데 말이에요. 산마루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이라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잘못했다고 느끼면 바로 사과하는 것도 장점이고요. 저도 산마루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하면서 대리 만족을 많이 했죠.”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 때문일까. 극 중 산마루는 실제 정용화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용화는 드라마를 촬영한 이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개인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더 패키지’를 찍고 나서 제가 산마루를 닮아가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이전에는 제 감정을 숨길 때가 많았거든요. 힘들어도 티를 안냈죠. 하지만 요즘에는 제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해요. 이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죠. 촬영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드라마 속 대사들이 지금의 저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어요. 사실 그냥 하는 말인데도 말이죠. 여러 의미로 저에게 힐링이 된 드라마였어요. 시청자 분들도 위로받는 느낌이셨을 것 같아요.”
정용화가 SBS ‘미남이시네요’로 연기를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긴 시간동안 여러 작품에서 연기 경험을 쌓으며 작품과 인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캐릭터의 멋진 모습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캐릭터의 연구에 깊이를 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8년 전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당시엔 ‘어떻게 하면 캐릭터가 멋있게 보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더 패키지’를 하면서는 대본을 질릴 정도로 봤어요. 대사가 입에 붙을 정도였죠. 또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정말 깊게 해봤어요. 전작 tvN ‘삼총사’를 찍은 이후에 다양한 대본을 읽으면서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산마루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을지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것까지 상상했죠. 덕분에 이번엔 연기를 하면서 내가 산마루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청자들도 ‘산마루는 저럴 것 같다’고 공감하실 수 있게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정용화는 그룹 씨엔블루의 리더이자 가수, 작곡, 배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오랜 시간 여러 일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각 분야에서 모두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용화는 자신의 욕심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느 분야에서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자신을 채찍질한다는 얘기였다.
“제가 욕심이 많긴 많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도 힘들지만, 전 여러 분야에서 다 인정받고 싶거든요. 그래서 가수로 활동할 때는 음악으로, 연기를 할 때는 연기로만 승부하자고 생각해요. 배우 정용화를 등에 업고 가수 활동을 하지 않고, 가수 정용화를 등에 업고 배우 활동을 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욕심이 많은 만큼 실력이 없으면 민폐일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전 자신 없는 분야는 절대 안 해요. 예를 들면 전 게임을 절대 안 해요. 게임을 진짜 못하거든요. 지는 것도 너무 싫고요. 제3자의 입장에서 저를 볼 때 ‘진짜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깔끔하게 안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너무 감사하게도 드라마를 하고, 앨범을 내고, 예능을 하면서도 계속 저를 찾아주시니까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