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영화를 끌어안았다. 지난달 24일 종영된 JTBC ‘전체관람가’는 방송과 영화의 결합으로 주목 받았다. 지금까지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영화를 소재로 했지만, ‘전체관람가’처럼 실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영화 제작과정을 담은 메이킹 필름과 그 결과물을 방송 MC와 영화감독이 함께 지켜보는 장면도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대체 어떤 프로그램이 될지 의문을 가졌던 시청자들도 첫 방송 이후 ”의미 있는 예능이 탄생했다“고 극찬을 보냈다.
시청자들이 새롭다고 느끼는 정도만큼 제작진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방송 출연에 부담을 느끼는 영화감독들을 설득하는 작업부터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 등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메이킹 영상과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는 포맷도 감독들과 함께 만들어 나간 결과물이다.
최근 서울 상암산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미연 PD는 “방송도, 영화도 진짜 이 일을 좋아하지 않으면 오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 ‘방송과 영화의 협업’을 소재로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소재도 아닌 왜 영화였나요?
“주말 예능을 하던 중에 이동희 CP와 이야기하다가 영화 소재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어요. 사실 PD들이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영화와 방송의 협업이라는 소재에 대한 흥미도 높았고, 영화가 갖고 있는 파급력이 크다는 판단도 있었어요.
또 JTBC는 PD들에게 새로운 기획을 많이 요구하는 편이에요. 기획안을 내도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걸 원하죠. 저도 영화를 주제로 토크를 하거나 VCR로 영화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제작자들과 방송 제작팀이 모여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렇게 생각하며 감독님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 지금까지 ‘전체관람가’ 같은 프로그램이 나오지 못했던 이유는 뭘까요?
“영화와 협업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모든 PD들이 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동안 못했던 이유가 있어요. 방송에서 임필성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플랫폼의 벽이 높았던 거죠. 영화 스태프 분들은 자신들이 방송에 소비되거나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방송 출연을 꺼려하셨어요. 방송 쪽도 그동안 영화를 다루고 싶었지만 개봉작 토크나 분석 외에는 할 수 있는 장르가 없었고요.
처음에 영화 투자사, 배급사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다들 정말 비관적이셨어요. 영화감독들이 방송에 출연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노출을 꺼려한다고 하셨죠. 그들이 뭐가 부족해서 방송에 나와서 영화를 찍겠냐는 얘기도 들었어요. 예능국 부장님도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봤는데 안될 것 같다고 하셨고요. 제가 일단 감독님들을 만나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일대일로 만나기 시작했어요. 한 번만 만나달라고 계속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했어요. 그렇게 감독님들이 계신 곳에 찾아 가서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놓으셨던 것 같아요.”
△ 결국 1~2명도 아니고 10명의 감독님들이 출연했어요. 어떻게 설득하신 건가요?
“총 6~7개월이 걸렸어요. 처음엔 안 될 거라는 전제로 시작했기 때문에 한 분만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주셔도 너무 기뻤어요. 당시 JTBC에서 ‘크라임씬’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장진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감독들이 꺼려하는 건 이런 거고, 방송을 하면 이런 걸 하고 싶을 거라고, 감독들을 만나서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진심을 보여주면 마음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조언을 많이 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 얘길 듣기 전엔 감독님들을 만나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영화적으로 보여주실 게 많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처음에 1~2명, 그 다음에 3~4명을 섭외하면서 감독님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어요. JTBC에서 단편 영화를 찍게 해주는데 영화 주제나 소재도 전적으로 맡기고 다른 건 원하지 않는다고요. 또 저희가 저작권 문제도 해결해서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할 수도 있고 장편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에 메리트를 느끼셨던 것 같아요.”
△ 그러고 보니 영화 저작권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재림 감독님이 저작권 문제에 대해 많은 의견을 주셨어요. 감독님들에게 저작권이 큰 의미가 있다는 걸 그 때 알았어요. 감독님들에게 저작권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요. 연출료를 받지만 저작권이 빠진다는 게 창작자들에겐 억울한 부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저작권 문제는 꼭 해결해드리고 싶어서 그 과정이 오래 걸렸어요. 회사에도 창작자로서 이건 꼭 담보해드리고 싶다고 어필했죠. 보통 상업 영화를 제작하면 영화, 시나리오 저작권이 배급사, 투자사로 가지만, 저희는 JTBC와 감독님들의 공동 소유로 했어요.”
△ 영화 제작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제작비가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초반엔 협찬이나 제작비를 받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갔죠. 영화진흥위원회 사업부도 갔고, 나중엔 중소기업진흥원도 찾아갔어요. 프로그램과 영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투자를 받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어쩔 수 없이 JTBC 제작비로 가보자고 했어요. 좀 더 해드리고 싶었지만 3000만원이면 몇 분 정도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논했어요. 3~4일 촬영에 끝낼 수 있는 12~15분이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시더라고요. 예산을 짜봤는데 인건비를 빼니까 50~60%가 남더라고요. 감독님들이 모두 일단 인건비를 꼭 빼야 된다고 하셨거든요.
저희 쪽에서 해결해드릴 수 있는 건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드렸어요. 배우나 살수차, 특수 촬영 등 제작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아이템을 지원해드렸어요. 오디션을 열어서 신인 배우들을 캐스팅하기도 했어요. 오디션은 문소리 씨와 감독님들의 아이디어였어요. 신인 배우를 양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크시더라고요.”
△ 3000만원이라는 제작비가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부족한 예산 때문에 감독님들이 싸게 해달라고 구걸하는 모습도 나왔고요.
“제작비 얘기가 많았죠. 그 얘기가 크게 불거졌을 때 방송 제작팀과 영화감독님들이 다 힘들어하셨어요. 3000만원으로 영화를 찍는 것만 갖고 ‘열정페이’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감독님들이 다 제작비를 오바하신 것처럼 기사가 나가서 속상하기도 했죠. 방송을 제대로 보셨으면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도 있어요. 박광현 감독님이 클럽에 많은 사람들을 채웠지만, 그건 감독님이 ‘보조 출연자 100명’ 지원권을 뽑으셔서 저희가 해결해 드린 거예요. 저희가 비용이 많이 드는 특수 장비를 해결해 드린 것도 많았어요. 또 장소 대여는 협상이 가능하고 저희가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같이 설득한 적도 있고요.”
△ ‘전체관람가’에 대한 영화계 반응은 어땠어요?
“영화계 쪽에서는 반반인 것 같아요. 참신하게 만들어서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고, 영화인들이 왜 방송에 나가야 하냐는 의견도 여전히 있어요. 감독님들이 영화 시사회를 다녀오시면 ‘어제 누구를 만났는데 이 프로그램 얘기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윤종신, 김구라씨도 다른 프로그램에서 ‘전체관람가’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셨고요. 영화, 방송 관계자들이 눈 여겨 보신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임필성 감독님과 영화 ‘꾼’ 시사회에 가서 김성수, 허진호 감독님처럼 접촉은 했지만 참여하지 못한 감독님들을 뵙고 인사를 드렸어요. 다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오니까 보게 된다’, ‘내가 하는 현장이 TV에 나오는데 밖에서 보니까 재밌더라’라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어떤 영화가 좋았는지 얘기하시는 걸 보면서 더 열심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감독님들의 긴장이 많이 풀리는 것 같았어요. 제작진에 주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요.
“감독님들이 처음엔 ‘진짜 이걸 시작하네’라는 마음으로 모이셨어요. 반신반의로 오셨죠. 촬영장을 담겠다고 했을 때는 걱정이 많으셨어요. 영화스태프들이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걱정도 있고, 메이킹 팀이 붙으면 영화 제작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걱정도 있으셨죠. 너무 가까이에서 찍거나 카메라수가 많아지는 것도 문제고, 스태프들 간의 불협화음은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얘기도 하셨어요. 또 요즘 ‘악마의 편집’이 많아져서 예능적으로 희생당하거나 이미지가 이상해지진 않을까 하는 불신도 컸고요. 6개월 동안 감독님들을 계속 만나서 ‘그렇게 안 할 겁니다’라고 설득했어요.
첫 방송, 두 번째 방송이 나간 후엔 마음이 많이 열리신 것 같았어요. 전 창작자들의 뒷이야기를 담고 싶었거든요. 많은 스태프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죠. 힘든 현장을 보고 영화를 너무 쉽게 평하고 별을 다는 네티즌들의 분위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들도 그런 장면들이 방송에 나가는 걸 보시고 현장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하셨어요. 그런 만큼 방송에 담을 내용도 풍부해지고 구성할 요소도 많아졌죠.
일부러 각 촬영 현장을 똑같은 제작진들이 가도록 세팅하기도 했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까 서로 얼굴 익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프리 프로덕션부터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찍고 하다보니까 마지막 촬영 때는 많이 친숙해진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그걸 해결하는 것도 큰 과제였어요.”
△ 배우 전도연, 이영애가 출연해서 큰 화제가 됐어요. 섭외 과정은 어땠나요?
“전도연 씨는 임필성 감독님이 오랫동안 섭외를 하셨어요. 처음에 전도연 씨가 나온다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 했어요. ‘그렇게 되면 영광일 것 같은데 가능한가요?’라고 물으면서도 성사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전도연 씨가 ‘전체관람가’가 영화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며 출연한다고 하셔서 더없이 영광이었어요. 전도연이 등장하는 영화가 ‘전체관람가’를 통해 방송된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어요. 전도연 씨가 출연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섭외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터닝 포인트가 됐죠. 초기에 이 프로그램이 어떤 건지 확신이 없는데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참여해주신 배우님들께 감사드려요.
이영애 씨는 이경미 감독님이 캐스팅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작진과 같이 섭외를 했어요. 이경미 감독님의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으셔서 출연 결정을 해주셨어요. 이영애 씨는 방송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현장 답사도 가시고 메이킹 영상 촬영을 많이 도와주셨죠. 또 저에게 프로그램의 의미가 좋으니 시청률은 신경 쓰지 말라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오히려 응원해주기도 하셨고요.”
△ ‘전체관람가’ 시즌2도 제작될까요? 만약 시즌2를 한다면 보완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사실은 하고 싶죠.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뭔가를 내놓고 싶은 건 모든 PD가 갖고 있는 열망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쉽게 제작되진 않을 것 같아요. 여러 감독님들의 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힘들어요. 한분 한분의 스타일과 개성에 맞춰서 사전 작업을 하는 것도 오래 걸리고 사전 촬영도 3개월 전부터 시작해야 되죠. 정말 힘든 작업이 될 거예요. 하지만 일단 영화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는데 여기서 멈추면 다시 시작할 때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영화 쪽에 계속 러브콜을 보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시즌2를 하게 되면 시청자들을 더 확장시킬 수 있는 접점을 찾을 거예요. 프로그램의 폭을 확장하려면 시청률 같은 근거가 갖춰져야 하는데 그게 너무 부족하니까요. 또 제작비 문제로 잡음 없이 만들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해야겠죠.”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