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드라마를 마친 소감을 묻기도 민망했다. 지난 1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tvN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6’을 마친 김현숙을 만났다. 타이틀롤인 이영애 역을 맡아 11년 동안 무려 16개 시즌을 소화했다. 이젠 그의 삶과 극중 인물의 삶이 같이 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김현숙은 ‘막돼먹은 영애씨’가 갖고 있는 차별점부터 설명했다.
“만약 보통 드라마에서 결혼 과정을 그리면 빨리 결혼식하고 ‘시월드’를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됐을 거예요. 그런데 ‘막돼먹은 영애씨’는 마지막 회에서야 결혼을 하잖아요. 결혼 자체보다는 워킹맘으로 펼쳐질 고비와 임신과 일 사이의 갈등, 사회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 아빠가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의 감정 등을 다뤘어요. 결혼 과정에서 느끼는 마음과 심리상태를 보여주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막돼먹은 영애씨’와 다른 드라마의 차이점 아닐까 싶어요.”
‘막돼먹은 영애씨’는 처음 기획될 때부터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자막도 들어가고 다큐멘터리처럼 인터뷰하는 장면도 있었다. 다른 드라마보다 작가들의 역할이 더 큰 이유다. 김현숙은 작가들과 의견이 달라서 다툰 적도 많다고 했다.
“작가들과의 갈등도 많았어요. 저와 영애의 인생이 정말 비슷해요. 영애도 극중에서 속도위반을 했는데, 현실의 저도 그랬거든요. 그래서 테스트기로 임신을 확인하고 병원에 가는 마음을 잘 알아요. 실제 김현숙은 놀라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마음도 공존했어요. 그래서 영애도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작가들은 너무 좋아한다는 거예요. 김현숙과 영애의 감정이 다른 거죠. 결론적으로는 작가들의 말이 맞았다고 생각해요. 김현숙과 영애의 경험은 엄연히 다른 건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요. 영애의 감정이 어떨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면서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켜가며 연기해야 할지 어려웠어요.”
영애에 대한 김현숙의 애정은 깊었다. 동시대에 비슷한 인생을 살아간다고 느낄 정도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 한 명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고민했기 때문에 얻어낸 결과다. 김현숙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작품에 임하고 있다.
“영애가 제 인생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어요. 두 가지 자아가 된 거죠.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전 시즌이 끝날 때마다 매번 힘들어요. ‘뿅’하고 갑자기 제 인생으로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어디선가 이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시즌1부터 시청해주신 시청자들도 똑같은 마음이신 것 같아요. 처음 볼 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애 엄마가 된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시청자들도 ‘막돼먹은 영애씨’와 함께 성장 과정을 거치신 거죠. 그래서인지 이전 시즌에 나온 배우들이 다시 나오는 장면을 보고 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첫 시즌부터 같이 한 멤버들은 평생 이 드라마만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해요.”
이렇게 오랜 기간 한 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로서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김현숙은 뿌듯하고 자부심도 있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털어놨다.
“제 인생으로 봤을 때는 정말 행운이죠.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극을 끌고 나가는 작품이 별로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감사하고 자부심도 있어요. 전무후무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요. 앞으로 이런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도 사람이라서 너무 힘들 때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어요. 반복되는 이야기도 많고, 배우로서 새로운 캐릭터도 해보고 싶을 때도 있죠. 그런데 막상 다른 작품을 해보면 ‘막돼먹은 영애씨’가 정말 좋았구나 하고 생각해요. 이 드라마만큼 인물의 정서를 디테일하게 표현해주는 대본이 별로 없더라고요. 결론적으로 정말 감사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