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서지혜 “‘흑기사’로 드라마 4~5편 찍은 느낌… 샤론 불쌍했어요”

[쿠키인터뷰] 서지혜 “‘흑기사’로 드라마 4~5편 찍은 느낌… 샤론 불쌍했어요”

서지혜 “‘흑기사’로 드라마 4~5편 찍은 느낌… 샤론 불쌍했어요”

기사승인 2018-02-21 07:00:00


배우 서지혜가 KBS2 수목드라마 ‘흑기사’에서 맡은 샤론은 평범한 악역이 아니다. 주인공인 문수호(김래원), 정해라(신세경)의 서사를 맨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늙지 않는 저주를 받고 20대의 모습으로 250년을 살아온 샤론이 있었기에 20부라는 긴 드라마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갈 수 있었다. 그녀가 없었다면 ‘흑기사’는 평범하고 밋밋한 로맨스 드라마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서지혜에게 ‘흑기사’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60~70년대를 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긴 시대를 소화하면서 초능력까지 보여줬다. 250년을 쌓아온 짝사랑은 물론 다시 나타난 문수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여성의 감정도 표현했다. 최근 서울 독서당로 한 식당에서 만난 서지혜는 드라마 시작 전부터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어려웠어요. 샤론이 25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하는 고민을 제일 많이 했죠. 제가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큰 숙제였고요. 고민 끝에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어요. 나중엔 작가님이 올드한 대사를 많이 써주셔서 그걸 잘 표현하려는 노력도 했고요. 아메리카노를 블랙커피라고 부르는 것처럼 옛날 말을 쓰는 설정이 많았거든요. 짝사랑하는 설정도 처음엔 공감을 못했어요. 어떻게 250년 동안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왔을까 싶었죠. 지금 시대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자신이 죽지 않는 존재가 됐다는 걸 샤론이 알고 난 이후엔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가 백희(장미희)뿐이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되더라고요.”


서지혜는 드라마에 드러나지 않은 샤론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샤론이 250년을 살아가는 동안 분명 문수호와 정해라가 환생을 반복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생에서 드디어 세 사람이 만나게 돼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흑기사’라는 것이 김인영 작가의 설명이었다. 악역이지만 샤론을 연기하며 공감하는 점도 많았다.

“샤론이 악한 존재로만 비춰지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말도 안 되는 악(惡)은 아니잖아요. 샤론의 행동에 이유가 있고 나름대로의 아픔도 있다는 점이 잘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저희가 생각한 느낌 그대로 잘 나왔던 것 같아요. 시청자들도 그렇게 봐주셔서 좋았고요. 찍으면서 샤론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랑을 할 줄도 모르고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표현하는 방식도 어설펐죠. 문수호가 프라이팬을 든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프라이팬을 들고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 같은 것이 짠했어요.”

서지혜는 ‘흑기사’를 통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까지는 배우 서지혜가 주로 차갑고 지적인 도시 여성으로 등장했다면, ‘흑기사’에선 코믹하고 무서운 모습도 보여줬다. 스스로 “저를 다시 한 번 발견하게 해준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도 했다.


“솔직히 드라마 4~5편을 찍은 느낌이에요. 다양한 장르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사극과 시대극에 액션도 있었죠. 이렇게 한 작품에서 여러 장르를 할 수 있는 드라마가 흔치 않잖아요.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정말 재밌었어요. 즐거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촬영을 마칠 수 있었죠. 예전이었으면 대본을 보고 ‘나 이거 못할 것 같아’라고 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려워도 ‘해볼까’하는 도전정신이 생겼어요.”

서지혜는 요즘 연기를 할 때마다 예민하다 싶을 정도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고민을 해야 발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도 더 커졌다. 마지막으로 ‘흑기사’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의 드라마인지를 설명했다.

“작품을 하나씩 끝낼 때마다 얻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제가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두는 편이거든요. 샤론을 연기하면서는 ‘내가 이렇게 미치도록 한 남자를 사랑해본 적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할 때마다 누군가의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또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배웠어요. 겨울이라 계속 추웠거든요. 인간의 한계를 건드린다 싶을 정도였어요. 너무 춥고 힘들어서 발음도 안 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때도 있었죠. 예전이었으면 힘들어서 눕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었을 텐데, 지금은 내려놓고 참아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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