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소설’(감독 김진묵)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거짓말이다. 경석(오만석)의 거짓말로 시작하는 극은 수많은 인물들의 거짓말이 거미줄처럼 얽히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고야 만다. 극의 주춧돌이나 다름없는 순태(지현우) 또한 거듭되는 거짓말로 인물들에게 분쟁과 갈등을 불러온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현우는 “실제의 저는 거짓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거짓말을 잘 못 하는 편이에요. 자연스럽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죠. 거짓말은 될 수 있으면 살면서 안 하고 싶죠. 그래서 책상 앞에도 비슷한 속담을 적어놨죠. 하하.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저는 그 종류에 따라서 어지간하면 안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밝혀질 진실을 조금 늦게 알리려는 거라면 그냥 안 할 거고요, 영원히 진실을 모를 수 있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면 고민은 좀 해 볼 것 같아요.”
기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일종의 거짓말이다. 연기를 해야 하고, 시청자에게 거짓으로 기쁨을 주는 직업이지 않을까. 이에 지현우는 “연기에도 거짓이 있고 진짜가 있다”고 말했다. “제가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척’하지 말자는 거예요. 장면 자체를 제가 이해하지도 못하고 연기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죠. 진정성을 가지고 연기하려면 그 장면을 이해하는게 필수인데, 이해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면 그거야말로 제가 시청자에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의 지현우는 생각이 많다. 군대 제대 후 고민은 더욱 많아졌다. 지현우 본인의 말을 빌자면 20대의 지현우는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시건방지고 싸가지가 없을지라도 좋고 싫음이 명확했다. 그러나 20대의 끝 자락에 입대한 군대가 그를 바꿨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생활은 타인의 입장이 무엇인지 그에게 생각해보게 했다. “단체생활을 하니 참을성이 많이 생겼어요. 남의 입장을 한 번쯤 고려해보고, 제가 싫다 해도 참는 방법을 배웠죠.”
“배우로 있을 때는 후배들이 제게 다가오기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와 연령이 비슷한 친구들하고만 어울리게 됐죠. 군대가 아니면 지금처럼 제가 바뀌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들의 입장을 고려하게 되니 생각도 고민도 많아졌어요. 매사 힘들었고요. 그러다 최근에 팬이 제게 준 편지에서 답을 찾았어요.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고장 난 거래요’라는 말을 보고 감동해서 울컥했죠. 제 책상 앞에 붙여 놨어요. 하하.”
‘살인소설’은 서스펜스 스릴러라기보다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지현우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행오버’같이 말도 안 되게 끝까지 확 가 버리는 느낌의 영화를 좋아해요. 혹은 ‘구타유발자들’이나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도 좋아하죠. 얼토당토않은 상황인데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살인소설’을 찍게 된 이유도 그래서예요. 촬영 전부터 예산이나 액션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임했어요. 그런 것들보다는 한 장소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만으로 온전히 100분 이상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시나리오에 있다는 것이 좋았거든요.”
“20대에는 계속 멜로나 로맨틱코미디 장르를 찍었어요. 30대에는 계속 사회 문제를 다룬 시나리오만 연달아 5편을 하고 있네요. 하하. 특히 ‘송곳’ 이후에 제게 그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래도 로맨틱한 이미지가 떨어져 나간 게 아쉽진 않아요. 저는 평생 배우를 할 거니까요. 제가 살아가는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요? 제가 신인 배우 지현우에서 30대 배우로, 그리고 더 나이 들고 경험 충만한 배우로 바뀌는 과정을 거쳐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살인소설’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사진=박효상 가지)